[박상건 시인의 '섬을 걷다'] 전남 신안군 압해읍 압해도

질척이는 갯벌은 섬사람과 철새들의 터전이다
박상건 기자 2020-03-03 15:06:56

아직 봄이 당도하지 않은 2월 저물녘이면 어제와 내일의 징검다리를 건너며 고뇌와 번민에 휩싸이곤 한다. 삶의 무거운 단봇짐에 마음 서걱이다가 아무 일 없는 듯 허공을 가르는 바람처럼 다시 길 떠나는 여정. 그게 인생이다. 

인생은 나그네 길이다. 어중간한 시공간에서 마음이 답답하거나 울적할 때는 훌쩍, 섬으로 떠난다. 바다는 섬으로 밀려가 부서지고 섬은 철썩이는 파도를 동무삼아 생명력을 채찍질한다. 그렇게 압해도로 떠났다. 그렇게 계절의 변화가 반복되는 과정에서 마음의 창으로 열며 위안 받고 반추하는 일. 여행을 떠나는 이유다. 그런 여정을 읽고 즐기는 여행자는 길거리 방랑자이고 철학자다. 

섬은 바람 부는 대로 물길 흐르는 대로 살라고 일러준다. 파도는 높이 솟아 이내 부서지면서, 삶이란 속절없는 것이지만, 부서지기에 새로운 길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허공에 보서지는 순간, 모든 것은 무(無)다. 그래서 푸르게, 더 푸르게 출렁일 수 있다. 그렇게 파도는 새로운 에너지를 생성한다. 그렇게 일렁이는 파도에 빛나게 빗발치는 햇무리를 본 적 있다면 이 바다와 섬은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안을 주고 위대한 삶을 일러주는 것인가를 실감한다. 

압해대교

이즈음 압해도는 사색의 묘미를 체감하기에 제격이다. 동쪽 바다 건너 무안군 삼향면과 청계면이 있고, 서쪽으로 천사대교 이어져 암태도로 건너고, 남으로 해남군 화원반도, 북으로는 신안군 지도가 있다. 어느 쪽으로 가든 연계 여행이 가능한 섬이다. 

“그리움이 없는 사람은 압해도를 보지 못하네”... 문득, 노향림 시인의 시 구절이 떠올랐다. 시인은 목포시 산정동 야산 기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 시절 목포 앞 바다 건너 저 편 압해도는 동경의 섬이었다. 그 섬에 가고 싶은 마음을 60여 편의 압해도 연작시집으로 엮었다. 

그렇게 그 시절에 압해도는 외딴 섬이었다. 조선시대 유배지였고 당나라 대승상 정덕성이 귀양 와서 우리나라 정씨 시조가 된 섬이다. 2008년 압해대교가 개통돼 목포 북항 쪽에서 승용차로 건너갈 수 있게 됐다. 압해대교는 왕복 4차선으로 교량 길이가 1.42km다. 다리를 건너면서 무안군과 신안군의 올망졸망한 섬들을 조망할 수 있다. 

압해대교 아래에 간척지 수로가 있다. 유명한 붕어낚시 포인트다. 압해도 바다낚시는 돔, 우럭, 농어가 잘 잡힌다. 초여름부터 10월까지 돔과 농어, 추석 전후에서 10월 초순에는 우럭 이 주로 잡힌다.

압해도 염전

압해도는 1969년 무안군에서 신안군으로 편입됐고 2012년 1월 1일 압해면에서 압해읍으로 승격됐다. 신안군청이 압해도에 있다. 간척공사로 염전과 논이 조성되면서 섬 면적이 2001년 48.95㎢에서 현재 67.5㎢로 늘었다. 해안선 길이는 217㎞, 현재 5947명의 주민이 산다. 주민들은 대부분 농업과 어업에 겸한다. 

압해도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바다를 누르고 있는 형상이어서 ‘누를 압’자를 써서 압해도라 부른다. 연근해에서 참조기, 민어, 숭어를 주로 잡히고, 포구와 어느 바다 쪽에서든 쉽게 마주치는 풍경이 낙지를 잡는 쪽배다. 김 양식장에서 큰 배가 드나들기 불편해 이 작은 쪽배를 사용하기도 한다. 염전도 활발하고 도자기 원료로 사용하는 양질의 고령토가 채굴된다. 

압해도 쪽배

압해도 먹거리로는 일명 ‘오돌이’라고 부르는 보리새우가 유명하다. 양식을 못해 수량이 적어서 귀한 먹거리로 대접받는다. 오돌이는 소금구이로 먹기도 하고 산 채로 고추장에 찍어 먹기도 한다. 술꾼들에게 세발낙지와 오돌이는 숙취해소는 물론 풍취 즐기는 소재로 인기다. 압해도 세발낙지가 이름값을 하는데 이따금 여행객들이 낙지를 보고 무의식적으로 ‘무안 세발낙지’라고 아는 척하다가 주민들에게 핀잔을 듣는다. 압해도 세발낙지는 꽤 전통이 있다. 잡는 대로 현지에서 소비돼 외지로 유통되는 경우가 드물다. 그러니 꼭 현장에서 맛보기를 권했다. 

포구마다 먹거리 장터와 특산물 전시장이 있다. 특히 송공선착장에 가면 양식장 풍경, 쪽배들 모습, 선상낚시, 포구를 드나드는 여객선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어민들은 갓 잡은 싱싱한 해산물을 싼값에 팔고 포장마차촌가 잘 단장돼 운치를 더한다. 송공 선착장에서는 도초-흑산도 간 여객선이 운항한다. 

압해도 특산물 중 9~10월에 토질 좋은 황토밭에서 수확한 배가 있다. 바닷바람으로 과육의 질이 좋고 높은 당도가 특징이다. 미국으로 수출할 정도다. 북룡리 염전 주위에 배 재배단지가 있다. 봄이면 하얀 배꽃이 선녀들 춤추듯 장관을 연출한다. 사꾸라 벚꽃에 비하면 역시 배꽃의 품격이 멋졌다. 여름에 무화과도 지천으로 열린다. 가을과 겨울에는 흑비둘기, 왜가리, 쇠백로, 멸종위기종 노랑부리백로 등을 관찰할 수 있는 것도 여행의 포인트. 청소년과 가족단위 철새탐조 체험여행 코스로도 각광받는 섬이 압해도다. 

송공산성

230m 송공산 정상에 송공산성이 있다. 몽고군 70척이 압해도를 침략할 때 우리 수군과 압해도 사람들이 무찔렀다는 사실도 안내표지판에 선명하게 기록됐다. 압해도는 고려와 후백제 때 전략적 요충지였다. 송공산에서 점점이 흩어진 섬과 평화로운 양식장 풍경도 조망할 수 있다. 형형색색의 작은 어선과 부서지는 햇살이 채색하는 바다풍경 특히 노을지는 풍경은 그대로 한 폭의 풍경화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황톳길로 잘 닦여 있다. 산책과 삼림욕 코스로 그만이다. 산기슭에 분재공원과 저녁노을 미술관도 있다. 

압해도 낙지들이 유명한 이유는 낙지가 사는 광활한 갯벌을 타고난 환경 때문이다. 갯벌도 볼거리다. 예로부터 압해도 사람들은 이 질척이는 갯벌을 삶터로 삼았다. 낙지, 짱둥어, 숭어, 농어 같은 어류의 서식 조건을 제공하는 한편으로는 주민들 삶의 터전이었다. 압해도 낙지는 뻘낙지라고 부른다. 색깔이 갯벌을 닮아 다른 섬의 붉은 색 낙지와 다르다. 맛이 부드럽다. 이런 갯벌에 서식하는 우럭조개도 압해도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색다른 조개다. 

신안지역에 염전이 많은데 압해도에도 천일염 생산지가 있다. 천일염은 바닷물을 햇볕과 바람에 자연 증발시켜 만든 것으로 염화나트륨 외 칼슘과 마그네슘 등이 함유돼 있다. 이곳 소금은 ‘굵은 소금’으로 주로 절임용으로 쓰인다. 염전 분포지역은 장감리, 분매리 지역이다. 

갯벌 해안도로

겨울과 이른 봄에 이 일대 해안 길을 걸으면 들판과 바다로 나는 기러기 떼들을 볼 수 있다. 기러기 행렬은 한 편의 영화다. 어디론가 길 떠나는 기러기 떼들은 기역자로 비행한다. 제일 앞 대열에 부모 새가 가족들을 이끈다. 맨 뒤에서는 할미새가 다치거나 비행이 어려운 어린 손주 철새들을 챙기며 날아간다. 

기러기 행렬을 바라보며 문득, 고향집이 그립고 선산에 묻힌 살붙이들이 그리워졌다. 그렇게 기러기들은 타지에 둥지를 틀고 한 세월을 보낸 후 새로운 봄을 찾아 떠나는 중이다. 살기 위해, 내일을 위해 더 높이 더 멀리 꿈꾸는 섬으로 비행 중이다. 

철새들이 이륙하며 떨구고 간 몇 개의 깃털을 주워 수첩에 끼어뒀다. 책갈피로 삼을 것이다. 우리 인생은 한 권의 책이다. 하루라는 작은 일생이 한 페이지씩 기록돼 책이 된다. 언젠가, 책장 속 오늘의 한 페이지를 열며 저 노을처럼 상념에 젖어들 것이다. 이제, 나도 이 섬을 떠날 시간. 인생은 나그네 길이다. 문의: 압해읍사무소(061-240-4002)

글・사진: 박상건(시인. 섬문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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