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많은 사람들이 자연을 찾아 여름 휴가를 떠난다. 휴가를 떠나는 이유가 단순히 더위를 피하기 위한 피서(避暑)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전혀 다른 자연환경 속에서 일상에 찌든 자기 자신을 바라보면서 새로운 충전과 삶의 좌표를 재정립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할 수 있다.
수많은 사회적 관계와 제도 속에 고립된 자아를 찾아보고, 새롭게 열린 마음으로 타인과 의미 있는 소통을 하기 위한 계기로 삼을만한 휴가지로 인적이 드문 조용한 섬은 최적의 장소다. 바다 한가운데 홀로 떠 있는 외로운 존재지만, 늘 그 자리에 변함없이 당당한 자태로 육지를 응시하고 있다. 숱한 세월 철썩철썩 부딪치는 파도에 깎이고 휘어진 해안선을 보듬고 출렁이는 섬은 해방일지를 써 내려갈 욕구로 가득찬 현대인들에겐 선망의 대상이자 체득의 산실이다.
스스로 자연의 일부가 되어 그 생존과 소통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는 조용한 섬 중의 하나로 충남 태안군 꽃지의 나치도(할미 할아비바위)를 꼽을 수 있다.
나치도(할미·할아비 바위)는 충남 태안군 안면읍 승언리에 위치한 2개의 무인도서로서 면적은 약 10,526㎡이며 안면도 자연휴양림에서 약 2km 되는 지점에 있다. 할미·할아비바위는 만조 시에는 바다 위의 섬이 되고, 간조 시에는 육지와 연결되어 자신의 모습을 다 보여준다. 영원히 만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육지와 섬이 바닷길로 이어진다는 것이 신비스럽고, 또 한편으론 거센 파도와 인고의 세월을 이겨낸 소통의 상징처럼 느껴진다.
왼쪽의 비교적 작은 것이 할미 바위고, 오른쪽이 할아비 바위다. 할아비 바위는 할미 바위보다 두세 배가량 크다. 또 깎아내린 절벽에 소나무 몇 그루가 드문드문 솟아있는 할미 바위와 달리, 할아비 바위에는 소나무가 빼곡하다. 섬이 되었을 때는 두 개의 바위처럼 갈라져 보이지만 물이 빠지면 두 개의 바위 아랫부분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마치 사랑하는 두 사람이 손을 꼭 잡고 있는 것 같다.
이 섬에는 사랑하지만 어쩔 수 없이 떨어져 있어야 했던 부부의 애달픈 전설이 내려온다.
통일신라 때인 9세기 중엽 청해진을 설치한 장보고 대사가 당시 최전방이던 견승포(안면도)에 승언(承彦)이란 장군을 지휘관으로 파견했다. 승언 장군에겐 ‘미도’라는 부인이 있었는데, 두 사람은 금실이 매우 좋아서 주변 사람들이 부러워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장보고의 명을 받은 승언 장군은 북쪽으로 출정했고, 그 후 여러 달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자 미도부인은 바닷가 높은 바위에 올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남편을 애타게 기다리다 결국 이 바위에서 숨을 거두고 그 자리에 남편을 기다리며 선 모습의 바위섬이 망부석처럼 생겨났다. 이후 어느 날 밤 갑자기 폭풍우가 갑자기 휘몰아치고 천둥번개가 내리치더니 미도부인이 죽은 바위 옆에 큰 바위가 우뚝 솟아올랐다. 이때부터 미도부인이 죽은 바위를 할미 바위, 그 옆에 우뚝 솟은 바위를 할아비 바위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마을 이름도 ‘승언리’로 지었다고 한다. (안면도 꽃지 할미·할아비 바위 전설)
나치도의 섬 둘레는 모두 기암으로 되어있고 해변에는 잔돌들이 많이 흩어져 있어 돌밭을 이루는 곳도 있다. 섬 일대 바다에는 광어, 우럭 등이 많이 서식하기 때문에 낚시터로 많이 이용된다. 뿐만 아니라 2개의 바위 너머로 붉게 물드는 아름다운 일몰 광경은 변산의 채석강, 가화의 석모도와 함께 ‘서해의 3대 낙조’로 손꼽힌다. 연말이면 이곳에서 일몰을 감상하고 이를 촬영하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여기에 주변의 꽃지 해변은 길이 3.2km, 폭 300m로 백사장 모래는 규사로 되어 있다. 경사가 완만하고 깨끗한 물빛, 수온이 적당해서 해수욕장으로서 입지 조건이 그만이다. 예부터 백사장을 따라 해당화가 지천으로 피어나 ‘꽃지’라는 어여쁜 이름을 얻었다.
마침 해양수산부는 지난달 31일 8월의 무인도서로 충남 태안군 꽃지해변에 인접한 나치도(꽃지 할미·할아비 바위)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서로 떨어져 있는 두 개의 섬이 바닷길이 열리면서 손을 맞잡은 것처럼 이어지고 육지와도 연결되는 신비롭고 변화무쌍한 나치도에서 올여름 세파에 찌들어 잊혀졌던 자유로운 ‘나’를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