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건 시인의 '섬을 걷다'] 전남 완도군 보길도

갯돌해변 상록수림에 젖어드는 파도소리와 윤선도 문학 향기
박상건 기자 2020-09-29 09:48:09

“동풍이 건듣 부니 물결이 고이 닌다/돋다라라 돋다라라/배떠라 배떠라” 

어부사시사의 윤선도가 머물던 섬. 그 섬, 보길도는 바구니처럼 둥그런 모양의 섬이다. 보길도 지명은 ‘바구리’ 옛말인 ‘보고리’에서 유래됐다. 보길도는 북쪽으로 노화도와 다리로 연결돼 있고 동쪽으로 소안도, 서쪽에 진도, 남쪽에는 제주도가 있다. 

보길도가는 막배와 노을


보길도는 전라남도 완도군 보길면 소재지 섬이다. 완도 본섬에서 23.3㎞ 떨어져 있다. 면적 32.51㎢, 해안선 길이 41㎞. 대부분 지역이 해발고도 300m 이하의 산지로 이뤄져 있다. 해안선은 급경사이고 암석해안이 발달했다. 윤선도 유적과 상록수림 등 섬 전체가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이다. 현재 1234세대 2705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농업과 어업을 겸한다. 전복과 다시마, 톳이 보길도의 특산물이다. 

보길도로 문학기행을 떠나며 막배를 탔다. 여행자도 여객선도 노을에 물들어가는 바다에는 전복양식장 색색의 부표들이 출렁이며 이색적인 노을 풍경을 연출했다. 완도의 연간 전복 생산량은 전국의 80%를 차지한다. 완도 전복 생산량의 대부분은 보길도, 노화도, 소안도 해역에서 양식한다.

세연정 시비


그렇게 보길도에 도착해 제일 먼저 윤선도 창작의 산실인 세연정으로 향했다. 팔각정 정자의 들창코로 내다 본 풍경이 아름다운 앵글로 다가왔다. 뜨락에는 어부사시사 가락을 옮겨놓은 시비가 있다. 고산이 독서하며 지낸 낙서재가 동쪽 숲길에 있고 한 채의 동천석실이 있다. 

보길도 남서쪽에 망끝 전망대로 갔다. 섬모퉁이에서 바라다보면 왼편에 뾰쪽산이다.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그 모양을 달리하는 신비의 섬이다. 섬 정상에서는 제주도와 추자도, 진도 조도와 관매도가 보인다. 일몰 포인트이기도 하다. 절벽 끝에서 풀 뜯는 염소들의 모습이 참으로 평화로워 보인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장관이 펼쳐진다. 바다 한복판에 끓어오르는 용오름 현상이다. 이 광경 앞에서 유안진, 나태주 시인 등 문학기행 참가들은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저마다 바다 한 가운데서 분수처럼 바다가 회오리치는 이런 모습은 처음 보았다고 입을 모았다. 

망끝 뾰족산

 

바다에서 용오름 현상을 바라보며 놀라는 유안진, 나태주시인(한국시인협회장)

뾰쪽산을 낀 보옥리 해변에는 공룡알을 닮은 갯돌밭이 펼쳐진다. 특히 이곳에서 생산되는 멸치젓갈, 건멸치는 최상품으로 쳐준다. 섬 동쪽 끝 백도리 해변석벽에 글씐바위가 있다. 송시열이 제주도로 귀양 가던 중 풍랑을 만나 보길도에 상륙해 자신의 심경을 한시로 새긴 것이다. 

다시 예송리로 향했다. 예송리는 보길도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 완도는 예로부터 문장가들이 많이 나와 마을 사람들을 계도하고 섬사람들이 예의 바르고 온순하다 하여 마을에 있는 소나무도 예를 갖춘 마을이라는 뜻에서 예송리라고 불렀다. 예송리 바닷가는 1.4km의 검푸른 조약돌 해변과 동백나무, 후박나무, 곰솔, 팽나무 등 250여종의 상록수림이 우거져 절경을 이룬다. 이 해변은 천연기념물 제40호다. 갯돌해변으로 불리는 바닷가에는 파도가 조약돌과 더불어 밀려오고 밀려 갈 때마다 ‘자르르’, ‘스르르’ 물결로 켜는 해조음이 일품이다. 이 해변은 보길도 동남쪽에 위치해 일출 포인트이기도 하는데 완도팔경 중 하나다. 

바로 앞에 외딴섬 복생도가 있다. 절벽은 바닷새들의 천국이며 풍란이 자생한다. 포구에서 잠시 낚싯대를 드리우며 한가함에 빠져 있을 즈음 이 마을에서 8대째 토박이로 살고 있는 한 어부를 만났다. 얼마 전까지 만 해도 바다에서 톳을 뜯어 끼니로 때우며 살았단다. 젊은 날 돛단배 타고 하루 걸려 당도하는 해남 땅을 오가며 볏단을 사와 초가지붕을 얹고 겨울나기를 했단다. 그 때 주민들은 늘 해풍과 싸우며 목숨을 담보로 바닷길을 오갔다. 어느 날 이웃 주민이 짚단을 싣고 마을 앞 바다에 이르렀을 때 거센 파도를 만나 목숨을 잃기도 했다. 


안개바다 보길도 어부


그렇게 지나온 세월. 지금은 연 평균소득이 4천만 원을 훨씬 넘는다. 전복, 다시마 양식이 주 수입원이다. 25일째 장맛비가 내려 나가지 못한 바다 일을 하러 나가는 참에 나그네도 따라 나섰다. 안개 자욱한 바다를 가로질러 전복양식장에 도착했다. 그는 다시마 양식장에서 자기보다도 훨씬 큰 다시마를 들어 올려 민첩하게 베어냈다. 그리고 이웃에 위치한 전복양식장으로 이동해 사람 무게만큼 무거운 전복통을 힘껏 끌어올렸다. 전복통을 들여다보니 윗부분에 다시마를 넣으면 아랫부분의 전복들이 기어 올라와 다시마를 갉아먹으며 살았다. 

전복은 연체동물로 썰물과 밀물이 교차하는 수심 5∼50m 암초나 해조류가 많은 청정바다에서 산다. 껍데기 열린 구멍으로 배설한다. 섬사람들은 이 껍데기를 주걱으로 사용했다. 전복의 주 먹이는 다시마와 미역. 그래서 다시마양식장과 전복양식장이 함께 조성돼 있다. 

전복은 4년간 성장하면 손바닥 크기로 자라 출하가 시작된다. 이런 최상품 가격은 10만원을 넘는다. 대부분 도매상에게 넘기는 방식이라서 현지에서는 절반 가격에 거래된다. 전복양식은 육지 농사 적자를 면해준 복덩이다. 가난한 그 시절 입에 풀칠해주던 것이 톳이었다. 전량 일본으로 수출하던 시대였다. 이 톳도 품값에 비해 월등한 가격효과를 낸다. 그렇게 보길도는 톳과 전복양식으로 부자마을이 됐다. 

이 어부는 두 양식장을 오가면서 한쪽의 적자를 보전하는 방식으로 양식장을 운영한다. 양식장을 오가는 배 한 척 외에도 낚싯배 운영과 민박도 겸한다. 어느 한쪽의 벌이가 시원치 않을 때를 대비하는 장보고 후예다운 바다경영 실력을 지녔다. 이 일대는 감성돔, 볼락, 참돔, 돌돔이 많이 잡힌다. 

섬사랑시인학교 보길도 캠프 참가자들


다시 포구로 돌아와 맞는 저녁 무렵. 문학기행을 다녀온 일행과 낚시체험을 다녀온 참가들이 만나 폐교 운동장에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노래와 시를 읊조리며 싱싱한 회에 소주 한 잔씩을 돌렸다. 

풍랑주의보로 며칠 새 뱃길이 막혔다가 다음날 다행히 보길도를 빠져 나왔다. 진도 쪽으로 노을이 지고 있었다. 적막한 어촌과 바닷가 풍경들이 노을 속에 젖어들었다. 산다는 것은 때로 이렇게 모든 것 다 내려놓고 아련히 젖어가는 일이다. 벅차고 요동쳤던 파도 같은 삶도 피곤한 영혼을 데불고 집으로 돌아오면 이내 평온히 잠들 듯 하루해를 보내고 다시 떠오르는 태양을 맞듯이 해와 달, 슬픔과 기쁨을 반반씩 버무리 가는 여행길이 인생길이. 여행길에서 만난 자연은 그렇게 우리가 익숙해지는 시공간을 일깨우면서 인간의 원초적 고향으로 돌아가게 한다. 

보길도 가는 길은 해남 땅끝마을과 완도 화흥포항에서 여객선이 운항한다. ‘땅끝’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여름철 해남 갈두항 선착장으로 가는 경우가 많은데 피서철에 외길엔 차량이 대거 몰리면서 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굳이 성수기에 이 노선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 완도 화흥포에서는 완도농협에서 운영하는 보길도 차도선이 있다. 완도터미널과 화흥포 간 셔틀버스도 운영한다. 화흥포에서 동천항까지 차도선으로 50분 소요된다. 땅끝에서는 1시간 소요된다. 노화 동천항에서 내리면 노화도에서 보길대교를 건너 보길도로 간다.

문의: 보길면사무소(061-550-6621)

박상건(시인. 섬문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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