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산도는 해남반도와 고흥반도 가운데 위치한다. 완도군청 소재지로부터 동북쪽 18㎞ 해상에 있는 면소재지 섬이다. 약산도는 유인도 1개와 6개 무인도로 구성됐고 356m 삼문산을 중심으로 세 갈래 산맥으로 이뤄진 타원형 모습이다.
섬 면적은 28.74㎦이고 2416명의 어민이 산다. 주로 김, 미역, 다시마를 양식하는데 특산품 흑염소가 유명하다.
그날 도선을 타고 약산도로 향했다. 선장은 긴 수염을 가다듬으며 조타실에서 “저기 저 섬은 소죽도, 그 옆은 대죽도…”라면서 친절히 섬들을 소개해줬다. 섬마다 다리가 연결되면서 먼발치서 조망하는 매력과 여유가 사라진 점이 아쉬운 대목이다. 조근조근 섬 이야기를 들려주던 선장과의 만남도 추억도 사라져간다.
약산도 철부선의 마지막 선장으로 기록될 칠순 넘긴 김길동 선생의 주름진 세월과 희디흰 머리카락의 인상이 아련한 추억으로 남았다. 스물다섯 살 때부터 올망졸망한 섬 사이를 오가는 마도로스 인생을 살았다. 그렇게 섬사람들과 일생을 함께 했다.
철부선이 양식장을 지나고 어민들은 분주히 다시마를 걷어 올렸다. 다시마 양식장 옆에 전복양식장이 있고 건너편에 금당도가 보였다.
약산도는 고려 때 영암군 탐진현, 조선 때 강진현에 편입됐다 완도군에 소속됐다. 약산도는 강진군, 완도군과 접근성이 좋다. 약산도는 고금도와 1999년 다리로 연결됐고 고금도가 2008년 강진 마량과 연결되면서 승용차로 섬을 넘나들 수 있게 됐다.
1946년 해방 이후 고금면에서 분리된 약산도는 ‘약재가 많은 산’이라는 뜻에서 ‘약산(藥山)’이라 불렀다. 옛날에 조약도(助藥島)라고 불렀는데 ‘약을 수북이 담아 일 한다’는 뜻이다. 조선시대 중국에서 약용식물을 탕재로 많이 수입했는데 중국에서 가장 가까운 약산도에 약초를 이식했다. 약산도는 그렇게 약용식물 재배단지가 됐고 약탕에 약을 끓이는 ‘조약도 사람들’이 됐다. 완도 토박이들이 아직도 ‘조약도’라고 부르는 이유다.
약산도는 남해안 섬 가운데 ‘약(藥)’자를 사용하는 유일한 섬이다. 해발 356m 장룡산 산자락은 삼지구엽초 등 130여 종의 약초 군락지다. 탱자나무, 보리수, 구절초, 참빗살나무, 노루발, 황련, 야생 도라지, 더덕 등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약산도 대명사가 된 삼지구엽초는 강장제 약초로써 3개 가지에 3개씩 잎이 난다. 익은 것은 뿌리가 노랗다. 건강한 섬에서 자란 이 약초를 먹고 방목 흑염소가 자란다. 흑염소를 방목하며 키운 섬도 약산도가 최초다. 이후 생일도, 금일도로, 경남 통영 앞바다에서 1시간 걸려 닿는 국도 등에서 야생 흑염소를 키웠다. 약산도 흑염소는 약초를 먹고 자라서 혀가 까맣다. 산악지대에서 생활해서 무릎이 까지고 털이 벗겨진 게 특징. 흑염소는 한방에서 빈혈쇠약, 산후조리 한약재로 사용했고 궁중 진상품이었다.
약산도는 대나무도 많다. 대나무가 자생하는 죽도(竹島)가 있다. 대숲 울창한 마을로 죽리, 죽생리, 죽선리가 있다.
배를 탈 경우 금일도 도장항을 오가는 당목항에서 하선한다. 당목항은 완도, 금일도, 생일도, 고흥 간을 운행한다. 당목은 고흥군과 금일읍을 연결하는 포구로 포촌이라 부른다. 이 포구를 내려다보는 곳에 오래 된 당나무가 있어서 마을 이름이 당목리다.
당목항에서 우측 모퉁이로 돌아서면 가사해수욕장. 섬의 유일한 해수욕장이다. 모래 질이 곱고 경사가 완만하다. 리아스식 풍경과 100년을 넘어선 동백나무 숲이 300여m의 아담한 해변과 조화를 이룬다. 동백 숲 아래 수많은 약초들이 계곡 물을 마시며 자생한다. 약초가 많아 약나무산이라고 부르는 숲은 삼림욕과 냉수욕 코스로 해수욕에 좋다. 흑염소와 토종닭 요리 식당도 있다.
이 해변에서 오른쪽 당목항 너머 섬 끝자락에 섬이 있는데 섬어두지(섬어장머리)다. 물고기가 많이 잡히는 섬으로 바다 동쪽이라서 해동리라고 불렀다가 행정구역 개편 때 어두리(漁頭里)가 됐다. 1983년 청자 등 3000여 유물이 인양돼 화제가 된 섬이다. 섬에는 느티나무 세 그루가 엉켜 자라는데 삼성수(三姓樹)라고 부른다. 어두리 첫 입주민 김씨, 박씨, 권씨 세 성씨가 형제결의 후 살면서 기념수로 한그루씩 심었다고 한다. 고목이 쓰러지면서 1960년 은행나무를 다시 심어 음력 정월 보름에 제를 지낸다.
약산도는 돌도 많다. 산중턱에 비둘기 떼처럼 보이는 것들을 가까이 다가서 바라보면 바윗돌 부스러기들이다. 이 돌 쪼가리 바위를 ‘꾸뜰바리’라 부른다. 그래서 이 마을을 비둘기 구(鳩)자를 붙여 구암리라고 부른다. 구암리는 툭 트인 바다를 조망 포인트다. 삼문산 정상인 해발 399m의 망봉은 진달래 군락지로 4월말부터 5월초까지 절정을 이룰 때 진달래축제가 열린다.
봄부터 가을까지 약산 앞 바다는 자연산 굴 따기, 낙지잡기, 매생이 양식으로 한창이다. 이즈음 갯바위 낚시도 인기다. 최근 목포지방해양수산청은 장용리 암초지대에 등대를 설치했다. 이 해역은 간출암지대인데 썰물 때 바다 위에 드러나고 밀물 때는 바닷물 속에 잠기는 암초지역을 이른 것인데 낚시꾼들은 ‘여밭’이라 부른다. 만조와 안개가 낄 때 조업하는 어선들의 안전을 위협함으로 등대가 필요한 해역이다.
진달래 숲 망봉은 섬 풍광을 감상하기에 최적지. 북으로 마량포구와 월출산이 보인다. 동으로 거금도, 금당도, 금일도, 생일도가 분재처럼 떠있다. 남으로 신지도와 혈도, 갈마도가 수석처럼 전시됐다. 맑은 날에는 청산도, 추자도, 제주도가 갈매기 나래처럼 출렁여온다. 서쪽으로 신지도 명사십리, 완도 최고봉 상황봉이 그 아랫녘으로 노화도, 보길도, 소안도가 펼쳐진다.
이처럼 한 폭의 풍경화 속이 섬들이 펼쳐지는 약산도 바다는 다도해국립해상공원이다. 쪽빛바다에 어선에 몸을 맡긴 채 출렁이며 조업하는 어부들 모습은 이 풍경화의 화룡점정이다.
완도군은 약산도 숲과 해양공간을 활용한 해양치유체험센터를 운영할 계획이다. 해동・당목·가사리 마을을 잇는 해수걷기코스, 해양치유데크, 해수욕탕, 해양치유의 방이 들어선다.
이윽고 포구에 당도한 선장은 말했다. “항해하다 보면 암초가 있고 바람에 쏠려 뜻하지 않는 항로로 들어서 낯선 섬에 이를 때가 많았다…섬사람들도 힘들게 잡은 수산물들을 해적에게 빼앗기고 왜적에게 당하고 태풍에 밀리면서 돌산의 굶주림과 싸우는 헤쳐 왔다. 이제 후손들에게 경제적 부와 바다에서 터득한 지혜와 건강 관리방식을 전해줬다”라고 말했다.
약산도 사람들은 그렇게 때로 억척스럽고 때로는 지혜롭게 삶의 파고를 넘으며 살아왔다. 이제는 하선해야 할 시간. 선장은 눈을 가늘게 뜬 채로 키를 돌려 정박했다. 선미 스크루에는 포말이 파도를 감아 돌려 하얗게 부서졌다. 이내 바다는 아무 일 없는 듯 수평으로 스러졌다.
그 섬, 약산도로 가는 길은 강진 마량포구에서 고금대교와 약산대교를 거쳐 자동차로 갈 수 있다. 청정바닷길을 감상하며 삶과 자연을 음미하는 드라이브 코스로도 제격이다. 문의: 약산면사무소(061-550-64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