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 김현승, ‘가을의 기도’ 중에서
이 시는 김현승 시인의 1957년 첫 시집 ‘김현승 시초’에 실려 있다. 삼라만상의 종말을 알리는 가을을 맞아 내적 깨달음과 충실을 갈망하는 기도시다.
낙엽 지는 가을, 마음 휑할 때 읊조리기에 제격인 시다. 숲에서 한 잎 두 잎 낙엽 지고 마지막 가지까지 탈탈탈 털어낸 후 훨훨훨 바람결에 나부끼는 그 풍경 자체가 ‘겸허한 모국어’다. 그 말없는 풍경 앞에서 더 어찌 표현할 길 없을 때 우리의 모국어는 시어로 빛난다.
말은 생각의 옷이다. 말은 마음의 그림이다. 언어는 화석화 된 시다. 말과 언어는 너와 나를 잇는 창이다. 세상으로 열린 창을 통해 우리는 우리네 아침과 희망을 열고 일군다.
그런데 이즈음 곳곳에서 우리들의 말대가리는 쨍그랑, 쨍그랑 깨지고 부서지는 소리뿐이다. 언어가 난도질당한 현실 속에서 불현듯 이 시가 떠올랐다. 삼류정치, 저질언론, 사이비종교를 통해 현란하게 유통되는 언어는 물어뜯고 공격하는 창과 칼로 둔갑해 휘날린다. 그러는 사이 우리 아이들은 은어와 신조어가 새로운 트렌드가 돼 모국어와 더욱 멀어졌다.
급기야 국적 불문의 언어가 일상의 한복판을 치고 들면서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은 ‘대체어’ 목록을 발표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코드인사’는 편향인사, 혹은 성향인사로, 빅텐트는 초당파연합 혹은 포괄정당으로, 스윙보터는 유동 투표층, 필리버스터는 합법적 의사진행 저지 혹은 무제한 토론, 원포인트 회의는 단건(집중)회의로 바로 잡자고 발표했다.
뉴노멀은 새 기준으로, 언택트는 비대면, 브이로그는 영상일기, 플랫폼 노동은 (온라인) 매개노동, 코호트 격리는 동일 집단격리, 라키비움은 복합문화 공간, 소셜 디자이너는 공동체 (혁신)활동가, 테마주는 화제주, 슬로푸드는 정성음식, 케어 팜은 치유농장을 대체어로 선정했다.
우리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구호에 겉멋 들어간 사이에 그만큼 언어의 중요성과 가치가 상실됐다. 마음과 마음을 잇고, 열어주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경계 짓는 상징 기호와 기의로 전락했다.
그런 국민들에게 국어를 연구하는 정부기관이 잠시의 각성을 권고하지만 냉정히 돌아보면 대체어 목록에 순 우리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현실이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 <샘이깊은물> 편집장 시절에 외부 칼럼 원고 하나를 붙든 채 우리말과 토속어로 대체하느라 한나절을 쏟곤 했다. 그렇게 우리는 모국어로부터 멀어져 있었다.
그러니 “가을에는/기도하게 하소서./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이제는 더 이상 언어를 창과 방패의 불쏘시개로 삼지 말고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글・사진: 박상건(시인.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