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일기는 변덕이 심하다. 그래서 이즈음 여행길은 안개비, 혹은 진눈개비 풍경과 조우하곤 한다. 겨울도 아닌 것이 봄도 아닌 것이 2월의 그런 풍경은 명료한 색채와 느낌을 갖기 힘들다. 그래서 한 달을 앞서 사는 잡지사 편집자들이 3월호 잡지를 준비할 때 가장 애를 먹는다. 가는 날과 독자가 보는 달이 다르기 때문이다.
여정 속에 만난 풍경이란 게, 여기저기 잔설이 남아 있고 새순이 으쓱으쓱 어깨를 들썩이지만 꽃이 활짝 피지는 못한다. 아지랑이가 시원하게 피어오르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늘 그대로 피어오르는 시골 굴뚝 연기가 포근하고 정겹기 그지없지만, 이 또한 겨울 질감에 가깝다.
코로나19로 답답한 세상만큼 닫힌 가슴을 열어젖히고자 암태도를 찾았다. 목포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 날 암태도로 가는데, 풍랑주의보와 안개비가 내렸다. 다행히 천사대교가 개통돼 섬으로 가는 길이 막힌 것은 아니다. 맑고 푸른 풍경을 만날 수 없음이 아쉬울 뿐이다.
목포에서 28㎞ 떨어진 암태도는 빙하기 이후 1만2000년 만에 육지와 하나가 됐다. 목포에서 1750m 압해대교를 건너 압해도 송공리에서 다시 교량 7.22km 천사대교를 건너 암태도 신석리에 이른다.
암태도는 돌이 많이 흩어져 있고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600년 전 최 씨가 처음으로 섬에 들어와 살기 시작했는데, 암태도는 해발 355m 승봉산 줄기를 타고 43개 섬이 출렁인다. 유인도가 39개, 무인도가 4개다. 면소재지 섬으로 현재 2,070명의 주민이 거주한다.
암태도 면적은 43.2㎢이고 13.1㎢가 농경지다. 예로부터 쌀과 보리, 마늘, 대파 등 논・밭작물이 풍성했고 바다에서는 전복, 김양식업, 천일염 등으로 고소득을 올렸다. 암태도 쌀은 일직이 간척지 특유의 우수한 품질로 알아줬고 이로 인해 암태도 역사에서 선인들의 피와 땀, 눈물과 통곡이 절절하게 배여 있다. 일제 비호를 받은 지주들이 소작료 7할까지 올리자 주민들은 저항했고 이는 전국적인 농민운동의 도화선이 됐다. 이 과정에서 많은 농민이 희생됐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단고리에는 ‘암태도 소작인 항쟁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그 섬 암태도로 가는 길목인 천사대교는 자은도-안좌도-팔금도-암태도까지 건너갈 수 있도록 총 길이 10.8㎞, 너비 11.5m 왕복 2차로 연결됐다. 길이로 따지면 영종대교, 인천대교, 서해대교에 이어 국내 4번째다. 국내 최초 단일 교량 구간에 사장교와 현수교 공법이 동시에 적용됐고, 암태도 방면 사장교 길이는 1004m, 주탑 높이는 195m에 이르는 세계 최대 고저주탑 사장교다.
천사대교는 2010년 9월에 착공, 공사기간만 10년이 걸렸다. 배를 타고 1시간 걸려 섬에 도착하던 주민들은 이제 10분이면 오갈 수 있다.
천사대교를 건너 우회전하면 바닷가로 연결된 오도 요트장이 나온다. 여기서 길게 뻗은 천사대교를 조망할 수 있다. 오도에서는 천사대교 구간을 오가는 30분 코스와 초란도, 당사도를 오가는 1시간 코스의 요트투어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천사대교에서 직진코스인 신석리를 지나면 드넓은 익금마을 갯벌이 펼쳐진다. 꼬막과 낙지가 많이 잡히는 50ha의 갯벌은 익금어촌계가 관리하는 마을 사람들 삶의 터전이다. 다시 승용차로 5분여 거리에 기동삼거리 갈림길이 나온다. 여기서 우회전하면 자은도로 가는 길이고 좌회전하면 팔금도와 안좌도로 가는 길이다.
이 길목 정면 담벼락에 동백나무 파마머리 벽화가 있다. 문병일, 손석심 부부의 얼굴벽화다. 얼굴 위로 동백나무가 그려졌는데 실제 앞마당에 심은 동백나무와 절묘하게 연결돼 미소를 머금게 한다. 이 동백나무 벽화는 박우량 신안군수 아이디어였다. 박 군수는 천사대교 개통 후 찾아올 관광객들 볼거리를 위해 이 집 할머니의 얼굴을 그렸다. 할머니는 한사코 “남사스럽다”고 반대했지만 그려놓고 보니 여행객들 반응은 너무 좋았다. 이후 할아버지가 “나만 빠졌다”고 서운해 해자 박 군수가 부부 벽화로 그렸던 것.
현재 이 벽화는 천사대교를 건너는 관광객들이 발길을 멈춘 후 포토존으로 삼는 명소가 됐다. 우리네 삶과 여행길에서 스토리텔링이란 게 얼마나 대단한 매력과 저력을 발휘하는지 절로 실감케 한다. 결국 세상살이는 이러한 소소한 소통과 공감으로부터 나와 너, 우리의 진정성과 행복감을 실감케 한다.
암태도와 연결된 작은 섬이 추포도다. 2.5km에 이르는 바다를 건너기 위해 암태도 사람들은 300년 전에 개펄에 노둣돌을 놓아 건넜다. 그리고 세상이 변하면서 콘크리트 포장길이 되었다. 승용차가 지나는데 길 위로 파도가 쓰러졌다. 이 신비의 바닷길 바로 옆에 새로운 도로가 한창 건설 중이다.
다리 공사 현장 너머에 염전들이 자리 잡고 있다. 신안에서는 전국 천일염의 75%인 연간 30만 톤이 생산된다. 해산물 먹거리 중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새우구이. 굵은소금 위에 새우를 얹어 구워먹는 맛이란... 특히, 천일염은 다른 소금에 비해 나트륨 함량이 낮고 미네랄이 풍부해 원활한 신진대사를 돕는다. 천일염을 깔고 그 위에 새우를 굽기 때문에 천일염의 간이 새우에 배어 맛과 식감을 높여준다.
염전 반대쪽으로 차를 돌리자 대파 캐기가 한창이다. 대파의 흰 줄기에는 사과보다 5배 많은 비타민C가 함유돼 있다. 뿌리에도 면역력 증진에 좋은 알리신과 폴리페놀 성분이 많아 감기예방 및 피로회복에 아주 좋다. 녹색 잎에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베타카로틴과 관절에 좋은 칼슘이 많아 노화 방지에 도움이 된다.
현재 대파 산지가격이 많이 떨어졌다. 한 주민은 “1kg당 상품 기준 2,309원으로 평년가격 3,349원과 비교해 맞아 낮아졌다”면서 “가격도 내리고 코로나19로 건강을 더더욱 챙겨야 할 때이니 대파를 많이 먹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국 대파가격이 내려간 이유는 신안, 진도 등 전남지역에서 출하되는 겨울 대파 생산량이 많은 탓이다.
추포도 끝 선착장에서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거리에 서근등대가 있는 섬이 보인다. 작은 섬처럼 보이지만 팔금도 원산마을 끝자락 해안선이다. 비금도, 도초도 가는 배를 타는 남강선착장 위로 팔금도 가는 중앙대교가 이어졌다.
서울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천사대교로 방향으로 향하던 길에 신석리의 ‘에로스 서각박물관’을 찾았다. 서각(書刻)은 나무판에 글자나 그림을 새겨 넣은 것을 말한다. 이 박물관은 1999년 폐교된 암태동초등학교를 고쳐서 지난 2015년 7월 개관했다. 서각존, 사랑존, 작가존, 이색성체험방 등 테마별로 900여 점 작품이 전시됐다. 전시관과 별도 공간에는 폐교 직전까지의 아련한 역사의 채취를 담은 암태동초등학교 교실 풍경이 재현해 이곳을 찾는 7080세대들에게 아련한 ‘국민학교 추억’을 떠올려주기도 한다. 문의: 암태면사무소: 061-240-4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