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망대해 그 너머/연사흘 흰 거품 물고/칠천만 년 꾹꾹 눌러 둔 고독이/마침내 폭발하더니만, 깊고 깊어 푸른/그 그리움 더 어쩌지 못하고/파도소리 뜨겁게 퍼 올려/등대 불빛을 밝히는/서해 끝 섬//온몸 뒤틀며 태어난 기억/파도소리 홰칠 때마다 귓전에 여전한데/두 눈 껌벅 껌벅/황소처럼 드러누워/또 무슨 꿈을 꾸는가”(박상건, ‘꿈꾸는 격렬비열도’ 중에서)
그렇게 꿈꾸는 섬, 격렬비열도는 충남 태안군에 소속된 섬으로 충남 최서단, 대한민국의 영해 범위를 결정하는 영해기점 섬이다. 태안에서 55km, 중국 산둥반도와 268km 떨어져 있다. 신진도 외항에서 배를 타고 떠나다보면 가의도, 정족도, 옹도, 궁시도, 하사도, 난도, 우배도, 석도를 지나 서해 마지막 섬 격렬비열도에 이른다. 백령도보다 본토와 멀고 최서남단 가거도 보다도 중국에 더 가까워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섬이다.
격렬비열도란 지명은 격렬비열도 주변 10개 섬들이 줄지어 있는 형태를 말한다. 또 3개의 격렬비열도가 마치 기러기 열 지어 날아가는 모습과 흡사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격렬비열도는 서해에서 바닷물이 가장 맑아서 환경부가 섬의 보존가치와 등급을 최상급으로 평가했다. 해양수산부 역시 섬을 보전하고 관리하기 위해 서격렬비열도를 2014년 절대보전 무인도서로 지정했고, 2015년에는 우리나라 영해기점임을 표시하는 영구시설물을 설치했다. 기상청에서도 서해종합해양기상관측기지를 설치했다. 기상관측기지는 등대와 함께 난바다 해양감시와 파도 높이 등을 관측해 기상정보를 실시간 제공하면서 선박의 안전항해와 우리 국민들이 바다를 보다 더 유용하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렇게 격렬비열도는 무인도 서격렬비열도와 동격렬비열도 그리고 등대원이 거주한 북격렬비열도 삼형제 섬이 1.8㎞ 간격을 유지한 채 망망대해에 어깨 걸고 출렁인다. 섬들은 화산폭발로 현무암과 유문암, 화산재가 쌓여 형성된 바위섬으로 7000만 년 전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형성된 섬으로 추정되고 있다. 황금어장에는 참돔과 감성돔, 농어, 오징어, 멸치, 꽃게 등이 많이 잡힌다.
서격렬비열도와 동격렬비열도는 개인 소유의 섬이다. 한 때 중국인들이 이 섬 매입을 시도해서 군사적 어업적 가치가 높은 섬의 매각을 막기 위한 정부의 대책을 촉구하는 여론이 거셌다. 결국 정부는 영토 및 영해주권을 강화하기 위해 1995년 김영삼 정부 때 철수시켰던 등대원 3명을 해양수산부 대산지방해양항만청 소속으로 20년 만에 다시 파견했다.
격렬비열도는 행정구역이 태안군과 서산군에 편입되길 두 번씩 반복하다가 1989년 서산군이 분할되면서 태안군에 편입됐다. 본디 등대를 관할한 곳은 인천항만청이었다. 보급선은 인천항을 출발해 선미도, 목덕도를 거쳐 남쪽항로를 따라 내려와 격렬비열도에 보급품을 내려주고 회항했다.
격렬비열도는 파랑의 영향을 크게 받은 암석해안으로 해식애와 각각의 바위섬으로 쪼개져 점점이 서있는 이른바 시스택이 장관을 이룬다. 섬에는 원추리, 해국, 억새 군락지가 있고 찔레꽃, 갯메꽃, 딱총나무, 산뽕나무, 천문동, 쇠비름, 쇠무릎, 동백나무 동굴, 사철나무 등이 자라며 인적이 드물어 괭이갈매기의 집단번식지이다. 다만, 동격렬비열도 해안에 낚시꾼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 흔적들이 보여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서격렬비열도는 해수부가 지난 5월 ‘이달의 무인도서’로 선정할 정도로 해식동과 해식애의 신비로운 비경과 기암괴석이 아름답고 야생 동식물들의 보금자리이다. 바다 속은 15m까지 훤히 보인 청정해역으로 산호와 각종 해조류가 풍부해 제주해녀들이 원정 올 정도이다.
격렬비열도는 우리나라 영해 시작점임을 대외적으로 명확히 하고 널리 알리고자 북격렬비열도에 등대를 관리하는 국가공무원인 등대원이 근무 중이다. 격렬비열도등대는 높이 107m로 1909년 6월에 6각형 콘크리트 등대로 설치돼 첫 불을 밝혔다. 2004에 원형 철근콘크리트 등탑으로 재단장 했는데, 2단 철근콘크리트 기단 위에 원형평면과 상부로 체감되어지는 원통형 기둥이 조형미를 뽐낸다. 상판 하부는 몰딩을 두어 상판과 벽체의 접합을 부드럽고 구조적으로 안정감을 이룬다. 등탑 내부 지름은 3.85m, 벽체 두께는 0.25m이다. 내부 계단은 돌음 계단으로 49단을 올라서면 먼 바다로 빛을 발사하는 등명기에 이른다.
격렬비열도는 정기여객선이 다니지 않는다. 등대원도 신진도 외항에서 어민의 배를 타고 오고 간다. 나도 등대원에게 소개받아 이 배를 타고 섬으로 떠났다. 난바다의 섬에 도착하자 풍랑주의보에 사나흘 갇혔다. 해상날씨는 격렬했다. 결국 충남도청 행정선을 타고 뭍으로 나왔다.
격렬비열도는 겨울철 북서계절풍 영향으로 동해안보다 춥다. 한 때 2명의 주민이 고구마와 콩 작물을 키우고 바닷가에서 바지락과 굴을 채취해 생계를 이어갔으나 거주환경이 너무 취약해 섬을 떠나면서 결국 무인도가 됐었다. 섬에는 100년 이상의 동백나무 군락지가 밀림의 터널을 이루고 팽나무, 후박나무 등 다양한 희귀식생과 야생화가 피고진다. 절벽 끝에 이르자 망망대해가 펼쳐져 힘껏 함성을 내질렀다. 사방으로 평지 없는 가파른 절벽 주변에는 쇠고비 보리밥나무 갯장구채 땅채송화 갯기름나물 갯까치수영 해국이 만발했다. 절벽 아래는 조각한 듯 해식애 풍경이 절경을 연출했다.
해안가에서 등대로 가는 계단 옆에는 풍랑을 만났을 때 어선들이 대피할 수 있는 어민대피소가 있다. 등대를 지키는 등대원은 3명으로 2인1조로 번갈아가며 근무한다. 격렬비열도등대 김대현 소장은 “해양성기후로 여름은 숨 쉬기 힘들 정도로 습도가 높다.”면서 “세탁기가 있지만 무용지물이죠. 세탁을 해도 건조가 안 되고 강한 습도 때문에 옷가지가 바로 젖어든다”는 것이다. 또 겨울은 사정없이 춥다. 이 열악한 섬에서 우리 조국의 영토를 지키고 항해자의 길동무가 되어주는 등대원들의 노고에 몇 번이고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었다.
“대륙을 휘달리던 바람 소리를 키질하듯/산둥반도로 가던 장보고의 박동 소리를 풀무질하듯/독수리의 날개 짓으로 이 바다를 휘몰이 하는,/해안선 주상절리로 아로새기고/틈틈이 해국을 피워 흔들면서/다시 비상을 꿈꾸는 섬//멀리서 바라보면/유채꽃 원추리로 노랗게 출렁이고/등대지기 거닐던 동백 후박나무 밀사초 섶길 위로/포물선 그리며 푸른 바다에 수를 놓는/새들도 쉬어가는 삼형제의 섬,/격렬비열도”(박상건, ‘꿈꾸는 격렬비열도’ 중에서)
글・사진: 박상건(시인. 섬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