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섬에서 가족 논픽션 찍고 싶은 이유

미디어 고정관념으로 섬 추억 전해주고 싶지 않아
박상건 기자 2021-05-24 07:36:05

섬을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나는 대목이 있다. 나는 30대에 들어서기까지 섬에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내륙인(?)이었다. 섬에 대한 추억은 영화, 텔레비전을 통해 만들어지고 견고해졌다. 

멀리 수평선과 함께 한가로이 떠다는 배들의 중심, 뜀박질하면 5분에서 10분이면 끝까지 다다를 수 있는 작은 곳. 등대와 등대지기, 섬마을 사람들은 모두 고기잡이하며 사는 것으로 생각한 그런 섬. 

그런 섬에 대한 동경과 추억이 결혼하면서 산산조각이 조각났다. 전라도 광주에 사는 장인과 장모님은 1980년대 중반 신안 임자도를 자주 다녔다. 그때만 해도 교통편이 좋지 않았고 임자도는 무척 척박하고 살기 힘든 섬이었다. 

장인은 마방촌이라는 곳에 집을 짓고, 대파농사를 시작했다. 임자도는 대파로 유명한 섬이다. 늦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무렵에 마방촌을 지나면 육지에서 보기 힘든 광경이 벌어졌다. 해안도로 옆으로 파란 대파 물결이 춤을 춘다. 집들도 몇 집 안된 곳에 대형트럭이 쉴 새 없이 대파를 실어 나른다. 눈 내리는 날이면 더욱 장관이다. 대파에 눈꽃이 피었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 해변(사진=섬문화연구소DB)

결혼 후 처음 임자도에 가기 위해 선착장에서 배를 기다리면서 나의 섬에 대한 추억, 즉 미디어에 의해 형성된 추억이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아니 통째로 사라졌다. 배에 차가 통째로 실렸다. 제주도와 같은 큰 섬으로 갈 때 페리호에 차를 선적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지만... 

이 ‘쪼그만’ 섬에 갈 때도 배에 차가 들어간다니... 그것도 10여 톤이 넘는 화물차가 통째로 말이다. 섬에 내리자 더욱 ‘우스운’ 광경은 택시가 많았다는 것과 시내버스도 있다는 사실. 5분에서 10분 사이로 섬 전체를 돌아본다는 어쭙지않은 편견이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일종의 섬에 대한 문화적 충격이랄까. 

그렇게 섬과의 새로운 추억, 임자도 첫 사랑이 시작됐다. 섬사람과의 만남은 술로 시작됐다. 장인어른의 사위를 만나러 온 섬사람들은 내가 생각한 ‘섬사람=뱃사람’ 등식이 아니었다. 배를 타는 분들이 아니라 대파농사만을 전문으로 짓는 사람들이었다. 섬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술자리 옆에는 빈 술병의 섬이 만들어졌다. 술이 정말 취하지 않았다.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맑은 공기가 술잔을 기울일 때마다 알코올 기운을 다 빼앗아갔기 때문이었으리라.

아이를 낳고 다시 찾은 임자도는 아이에게도 많은 것을 주었다. 해변에는 아무도 없고, 수많은 갈매기들만이 한가로움을 즐겼다. 아이는 이 갈매기를 쫓으며 바닷가를 휘젓고 다녔다. 썰물 때가 되면 뒷동산만한 조그만 섬이 육지와 연결됐다. 나는 아이와 함께 그 곳으로 걸어 들어가 맨손으로 게도 잡고, 조그만 물고기들도 잡았다. 저녁때 이 포획물들이 반찬으로 올라왔다. 

장인과 장모님은 그 때 이곳에 새 집을 지었다. 아마도 더 많은 시간을 이곳에서 보내기 위함이리라. 나도 이런 곳에 나의 집을 짓고 싶어졌다. 아마도 매일 스트레스더미 속에서 살아가는 나의 모습이 싫은 반증일거다. 나의 머리에 흰 머리카락의 숫자가 늘어나는 만큼 임자도 가 그리워질 것이다. 아마도 우리 아이들이 조금 더 커서 학원에 가야만 친구를 만날 수 있다고 하소연할 때마다 임자도를 그리워할 것이다.

여름이면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임자도로 가고 싶다. 한 달만이라도 머물고 싶다. 세상의 것들을 이해하기 시작한 아이 때부터 아버지와 섬에서의 추억을 남겨주고 싶다. 그 섬에서 추억을 만들고 싶은 것은 영화나 텔레비전을 통해 섬에 대한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지 않아서이다. 나는 꼭 아이들과 함께 우리 가족의 ‘논픽션’ 영화에 직접 출연하고 싶다.

유홍식(중앙대 교수)

    박상건(시인. 섬문화연구소장)

섬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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