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석고황(泉石膏肓)이라는 말이 있다. 자연을 너무 사랑해 불치병에 걸린 상태를 말한다. 천석은 자연풍경, 고황은 병이 깊어 고칠 수 없는 상태다. 여행자는 길을 떠날 때, 철학자이고 방랑자다.
자연은 분명 인간과 떨어져 있을 때 가장 번영한다. 그런데 괴테는 신과 자연을 떠난 행동은 곤란하며 위험하다고 말한다. 자연을 통해서만 신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 그만큼 자연을 사랑하고 말한다. 그래서 괴테는 자연의 극치는 사랑이라고 일갈했다.
그렇게 떠난 섬과 바다, 항구와 방파제, 등대와 뱃길은 찾아갈 때마다 만날 때마다 늘 새롭게 다가온다. 새로운 시설이 들어서면 편리함과 함께 또 다른 메시지와 새로운 소통을 한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그 자리에 추억만 있는 게 아니라 지혜의 길도 열려 있다.
그렇게 길 떠난 대천항은 충청남도 보령시에 있다. 보령시내에서 12km, 대천해수욕장에서 1km 거리다. 대천항은 서해안시대를 더욱 앞당기는 서해 대표적 해상교통 요충지이자 어업전진기지다.
대천항은 1570m의 물량장과 1120m의 긴 방파제가 바다로 이어져 있다. 그 방파제 끝에 빨간 등대와 하얀 등대가 선박들의 신호등 역할을 한다. 빨간색 등대의 공식 명칭은 대천항방파제등대. 높이가 18m이고 콘크리트구조로 세워졌다. 등대의 불빛은 13㎞ 해역까지 비춘다. 외항 쪽으로 뻗은 북방파제등대는 12m 높이로 8각형 콘크리트구조인데 등대 불빛은 11.2㎞ 해역까지 전달된다.
특히 대천항은 보령 등 충청권 연근해 어선들의 거점 항구다. 연간 4만8000여척의 어선이 드나든다. 이 항구를 이용하는 선원들만 7000여 명에 이른다. 등대는 이들 선박들의 안전한 입출항을 돕는다.
대천항 방파제는 이 지역 대표적 일몰 명소이 연중 낚시꾼들에게 유명한 낚시 포인트다. 주로 망둥어, 꽃게, 주꾸미, 숭어, 고등어, 우럭, 광어, 농어, 감성돔 등이 잡힌다. 대천항방파제는 바다 안으로 들어가 볼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 탓에 낚시와 산책 등 레저 활동명소다.
최근 방파제 안전사고가 부각되면서 방파제 중 서방파제 쪽의 테트라포드에서는 내달부터 낚시와 일반인 통행이 금지된다. 이점 유념할 유필요가 있다. 테트라포드는 항구 안으로 몰려오는 대형 파도의 힘을 감소시키고자 방파제 바깥쪽에 쌓아 놓은 사각 원통형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들쭉날쭉 모양새에 물이끼가 끼어 해상사고가 발생하면서 이를 미리 방지하자는 차원이다.
대천항은 청정해산물 집산지다. 꽃게, 배오징어, 소라, 우럭, 도미, 대하가 대표 어종이다. 특히 꽃게와 배오징어는 보령 특산물이다. 대천항 부두에는 배오징어 말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해양수산부는 10년 단위로 우리나라 항만기본계획을 수립해 발표한다. 지난해 12월 ‘제4차 항만기본계획’에서 환황해권을 선도하는 해양항만 중심항구로 대천항을 비중 있게 발표했다. 항만기본계획은 항만법에 따라 항만분야 최상위 법정 계획으로 전국 31개 무역항과 29개 연안항에 대해 올해부터 2030년도까지 항만시설 규모와 개발 시기 등을 담고 있다.
대천항은 1968년 연안항으로 지정됐다. 서해에는 8개 무역항과 7개 연안항이 있다. 무역항은 인천항, 평택항, 대산항, 태안항, 보령항, 군산항, 장항항, 목포항이다. 연안항은 연평도항, 대천항, 비인항, 홍도항, 대흑산도항, 용기포항, 팽목항이다.
대천 연안항은 사계절 삶의 활기가 넘친다. 정박과 출항을 반복하며 오가는 어선과 어민, 섬으로 떠나고 돌아오는 여객선과 여행자, 수산시장을 찾는 사람과 상인들의 삶이 늘 활어처럼 살아 파닥인다.
특히 새벽 경매 때는 대천항의 생동감이 더 역동적이다. 경매가 끝나면 끝난 대로 싱싱한 해산물을 직접 구매하거나 구입한 해산물을 손질해주는 식당을 거쳐 맛보는 사람들로 활기가 넘친다. 특산물인 꽃게 매운탕, 생선회 등 싱싱한 해산물을 맛보거나 저렴한 각종 건어물과 활어를 구입해 가는 사람들도 많다.
대천항 일대 섬들은 이런 싱싱한 수산물을 생산하는 터전이자 여행객들이 찾아 떠나는 힐링 공간이다. 대천여객선터미널에서 오고 가는 섬은 외연도, 원산도, 안면도, 효자도, 삽시도, 고대도, 장고도, 녹도 등이다. 대천항 여객선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매월 2만8000여명에 이른다. 휴가철과 주말이면 섬으로 떠나는 여행객과 강태공들로 북적인 대합실은 코로나19 여파로 일부 낚시꾼과 홀로 여행객, 섬사람들뿐, 적막감이 감돌았다.
대천항에서 왼쪽 해안도로를 타고 가면 보령시 머드로 123번지에 대천해수욕장이 있다. 대천해수욕장은 백사장 길이가 3.5km, 폭100m로 규모가 꽤 큰 해변이다. 매년 10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는다. 대천은 동해바다와 쌍벽을 이룬 젊음과 낭만의 바다다. 그러면서 곡선미와 아늑함이 살아 있다.
대천해변은 경사가 완만하고 청결하다. 오랜 세월 동안 조개껍질이 잘게 부서져 만들어진 백사장 모래는 규사로 된 다른 백사장 모래가 몸에 달라붙는 것과 달리 부드러우면서 물에 잘 씻기는 게 특징이다.
백사장 너머의 솔숲은 울창하면서 정겹다. 해변의 정취를 만끽하며 야영캠프를 즐기기에 제격이다. 먹거리, 볼거리, 즐길 거리, 숙박시설 등을 잘 갖췄다. 대천해수욕장 중앙에는 머드상징조형물이 있는 머드광장, 좌측에 시민탑 광장, 우측에 분수광장이 있다. 분수광장은 야간에 조명과 음악이 어우러진 음악분수가 연출돼 볼거리와 만남의 장소로 유명하다.
연인・가족의 쉼터와 추억 만들기에 좋은 해변, 윈드서핑, 요트, 제트스키, 스킨스쿠버 등 다양한 해양 레포츠를 즐길 수도 있다. 인근 섬과 경치를 둘러보는 유람선 코스도 있다. 대천해수욕장의 상징처럼 된 보령머드축제는 지난해 코로나19로 온라인으로 치러졌다.
사계절 전국의 해양스포츠 마니아들이 찾는 대천해수욕장이지만 사회적 거리두기로 올 겨울은 홀로 떠나 여행자들만이 한적한 겨울바다와 해안도로를 걸었다. 일몰과 바다를 잠시 조우한 후 떠나는 여행자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문득, 인생이란 어차피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길 떠나는 나그네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대천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은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경부고속도로 천안 IC~아산~홍성~보령, 유성 IC~공주~청양~보령, 서해안고속도로 대천 IC~보령, 경부·호남고속도로지선 회덕 JC~유성 IC~공주~청양~보령, 호남·천안-논산간 고속도로 논산 JC~서 논산 IC~논산~부여~보령 코스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기차는 장항선 용산~대천역을 하루 16회 운행하고 장항~대천역은 18회 운행한다. 버스는 대천역 앞에서 대천해수욕장 방면 시내버스가 1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20분 소요된다. 시외버스는 서울~보령을 하루 32회 운행한다.
문의: 보령시 관광과(041-930-6563) 대천연안여객선터미널(041-934-87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