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풍경이 있는 삶] 박상건, ‘산길이 나무 위로 길을 낼 때’

아픔의 시간들 더 어쩌지 못해 허공에 길을 내고
박상건 기자 2020-01-10 09:33:47

도봉산에서 사패산 잇는 능선은 온통 빙판이었다

넘어지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바위 사이에 어깨 기대지만

니스 칠처럼 얼음 반지르르 깔아 무심한 화성암(火成岩)

바람에 식히고 언 마그마 위에 햇살 쨍그랑 깨진다

망월사 종소리 등성이 굽어 내려가고

발 시린 눈발이 참나무 줄기를 타고 올라가 산길을 댕겨 쌓는다

눈길 찍은 자리 밤새 아픈 상처를 빙판으로 다독였을 산길

그 아픔의 시간들 더 어쩌지 못해 허공에 길을 내고

눈꽃을 피웠을 것이다

깨달음의 눈물 흘렸을 것이다

산길이 응달 아래 사리처럼 고드름을 까놓고

생목으로 젖어가는 소리 들린다

우듬지에 푸른 봄날 흔드는 소리 들린다

-박상건, ‘산길이 나무 위로 길을 낼 때’ 전문

 

2003년에 펴낸 시집 ‘포구의 아침’에 실린 시이다. 

중국에서 날아온 미세먼지가 한반도 상공을 삼켰다. 빌딩 꼭대기만 하늘로 목덜미를 추켜세우고 희끗희끗 보인다. 먼지 속에서 신음하는 모습이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자화상 같다. 죄다 탐욕이 자초한 기후변화 탓이다. 자연과 호흡하지 못하고 편리성만 추구한 결과물이다. 

눈꽃(사진=섬문화연ㄱ수소)

겨울 산을 오르며 문득, 인간이 걷는 산길에는 눈이 쌓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나뭇가지마다 핀 눈꽃은 평화로운 풍경화로 대조를 이룬다. “야, 야, 너도 인간들 발길에 그만 짓밟히고 빨리 허공으로 올라오라”고 귀띔한 듯 했다. 그렇게, “발 시린 눈발이 참나무 줄기를 타고 올라가 산길을 댕겨 쌓는다”. 

“눈길 찍은 자리 밤새 아픈 상처를 빙판으로 다독였을 산길”에서, 숲은 경제적 가치뿐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루 30분 숲을 산책했을 때 심박 변이도가 안정되고 긍정적 감정이 증가하고 인지력이 향상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숲을 15분 보는 것만으로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농도가 15.8% 낮아진다. 숲은 아토피와 우울증 치유는 물론 도심 열기와 소음을 낮춰주고 이산화탄소를 정화해준다.

등산하며 사람들이 밟아쌓는 산길에는 눈이 쌓이지 않는다....

이 고향인 종이 소비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전 세계 연간 종이소비량은 약 4억만 톤. 30년생 원목 66억 3000만 그루 분량이다. 우리나라 1인당 종이소비량은 세계 11위. 국민 1인당 한 해에 종이 150kg을 소비한다. 8만 톤 천연펄프를 수입한다. 50cm이상 나무 1,500만 그루 분량이다. 소나무로 치면 높이 18m, 지름 22㎝ 크기 87그루가 베어 나간다. 

우리나라는 목재 80%를 수입하는데 대부분 보르네오 섬에서 온다. ‘아시아 허파’로 불리는 이곳 원시림 30%가 허공으로 사라졌다. 우리는 이래저래 원죄를 짓고 산다. 등산하며 사람들이 밟아쌓는 산길에는 눈이 쌓이지 않는다. “그 아픔의 시간들 더 어쩌지 못해 허공에 길을 내고/눈꽃을 피웠을 것이다”, “깨달음의 눈물 흘렸을 것이다” 그 눈물은 우리네 깨달음의 눈물이어야만 한다.

글・사진: 박상건(시인.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

    박상건(시인. 섬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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