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바다의 휴전선, 어로한계선을 알리는 등대 불빛
고요해 사색하기 좋고 일출 일몰 동시에 감상하는 바닷길
만선의 고깃배 들어오자 생동하는 대진항
여행은 한가함을 찾아 떠나는 일이다. 고요하고 깊고 푸른 동해바다는 번잡한 일상을 확, 날려버리기에 안성맞춤이다. 부서지는 파도 앞에 서면 여행의 여백이란 무엇이고 그 한가함이 왜 철학의 어머니인가를 새삼 깨닫는다.
동해바다는 해맞이 명소로 유명하지만 방향을 살짝 틀어 북녘으로 향하면 한적한 바다의 정취를 실컷 만끽할 수 있다. 강원도 인제와 고성을 잇는 태백산맥 고갯마루인 진부령을 내려서면 대대삼거리, 여기서 7번 국도를 타고 달리면 그 끝자락에 통일전망대가 있다. 특히 고성, 속초, 양양, 강릉, 동해, 삼척으로 이어지는 7번 국도는 동해 해안절경을 자랑하는 한국의 낭만가도이다. 앞서 진부령 길을 택했다면 하행 길은 7번 국도를 타면 좋다.
최북단에서는 통일전망대 눈앞에 펼쳐지는 해금강의 진면목을 감상할 수 있다. 휴전선 너머 풍경이라는 점이 색다른 느낌을 준다. 분단과 통일을 염원하는 우리 국민이라면 안보체험 분단체험 여행코스로써 통일전망대에서 출입국관리소, 최북단마을 명파해변 앞 저진도를 돌아 마차진에서 대진등대에 이르는 이 코스를 돌아보면 좋을 것이다.
대진등대는 1973년 바다에 전도등과 후도등 2개 등대를 연결해 일렬선상을 어로한계선으로 삼았다. 저진도의 작은 등대는 35m, 후조등은 20m 높이의 홍백색사각형의 콘크리트로 만든 등대이다. 이 두 등대가 동해바다의 휴전선인 셈. 당시 남한의 정치상황과 북한의 잇따른 간첩침투와 더 많은 고기를 잡으려는 어부들의 욕망을 억제시키는 등대로써 남북의 한계선 역할을 했던 것이다. 60년과 70년대에는 남쪽으로 한참을 더 내려간 거진등대가 어로한계선이었다. 남북상황이 좋아져 어족이 더 풍부한 북쪽으로 올라간 지금의 어로한계선으로 넓어진 것이다.
이후 1991년 어로한계선을 북쪽으로 5.5km 상향조정하면서 도등역할을 마치고 1993년 4월 1일 지금의 유인등대로 전환했다. 현재 대진등대는 동해안 최북단 무인등대인 저진도 등대를 원격 관리하고 남쪽으로는 거진 무인등대를 원격 조정한다. 다만 기존의 저진도 도등은 2개의 등대를 연결하는 어로한계선임을 표시하면서 어선들이 월북하여 조업하지 않도록 안전한 위치를 알려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전망대로 설치된 대진등대는 12초마다 한 번씩 37km 거리까지 남북한 바다를 비춘다. 눈, 비, 안개 등으로 1.5m 거리 안에 시야 확보가 어렵다고 판단할 때 20초에 한번 씩 소리를 울려서 등대의 위치를 알려준다.
동해는 바닷길 윗녘이든 아랫녘이든 해 뜨는 광경을 쉽게 볼 수 있다. 특히 해맞이 시즌 교통체증을 피하고 싶다면 진부령 고개를 넘어서든가 해안도로 따라 최북단 대진등대로 가보자. 이곳은 일출 뿐 아니라 일몰 포인트이기도 하다.
등대에 당도하기 전에 여행자를 맞는 곳은 길이 350m, 넓이 3,200여 평의 마차진 백사장. 참 희고 곱기 그지없는 모래들이 반짝이는 해변이다. 물빛 또한 한없이 깨끗하고 바다 속 장관이 거울처럼 드러난다. 마치 괌이나 사이판에서 보던 파스텔 톤의 이국적인 바다 풍경이다. 수심이 얕아 가족단위로 해수욕에 제격이다. 평상시는 개방하지 않고 7월과 8에 한시적으로 개방한다. 남쪽 대진5리에도 이러한 백사장이 있다.
이처럼 대진항은 고요하고 해맑은 풍경이 일품이다. 일상에서 과감히 탈출해 홀로 떠나고 싶다면, 혹은 연인과 가족끼리 조용히 사색하며 마음을 다스리고 싶은 여행자에게 안성맞춤인 해안이다. 동그랗게 휘어진 포구 또한 정겹고 아름답다. 귀한 명태가 많이 잡히는 곳이고 겨울바다 강태공들이 가자미 낚시를 즐기는 포구이다. 요즘 대왕문어가 많이 잡혀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뿐인가. 언제든 포구에서 갓 잡아온 다양한 생선회를 값싸게 맛볼 수도 있다.
아침 해가 뜰 무렵 두 개의 방파제 등대 사이로 고깃배가 들어오고 있었다. 어부가 정박을 위해 닺줄을 포구에 던지자
경매인이 성급히 다가서고 곧 종소리가 울렸다. 중간 상인들은 파닥이는 고기를 앞에 두고 손가락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며 흥정을 시작했다. 낙찰이다. 순식간에 이뤄진 모습이다. 찬바람 거센 바다를 헤쳐 온 물고기는 당연히 아주 싱싱했다. 밤잠 설치며 항해한 어부 삶의 무게는 이 순간, 가벼움으로 전환된다. 그 홀가분한 마음이 곧 내일 다시 새로운 만선을 꿈꾸며 동해로 출항하게 할 것이다.
경매를 마친 어부는 갑판에 덕지덕지 나붙은 물고기 비늘이며 그물에 걸려온 쭉정이들을 청소한 후 손바닥을 탈탈 털어내더니 포구 선술집으로 향했다. 노동 후에 맛보는 따스한 고봉밥과 막걸리 한 잔. 그 진정한 행복감을 누가 알랴. 고깃배들이 돌아온 바다 너머로 마침내 이글거리는 태양의 찬란함이 보였다. 아침 해는 그렇게 밤부터 꼭두새벽까지 뜨거운 풀무질를 하던 어부들의 땀과 거친 숨을 한 송이 꽃처럼 붉게 피어올랐다. 그것은 어부들의 ‘말없는 영광이요 행복의 상징어’다. 그 햇살 눈부신 허공으로 갈매기 떼들이 포물선을 긋는다. 적막한 동해바다와 푸른 하늘에서 펼치는 무녀들의 군무 같았다. 알고 보면 갈매기들도 늘 어부의 고단한 어깨 위에서 희망의 날개가 되어 퍼덕이던 어촌의 한 일원이자 아름다운 동행자인 셈이다.
그렇게 해가 중천에 뜰 무렵, 포구에 정박한 고깃배를 기웃거리며 물 좋은 횟감을 찾는 이방인들이 보였다. 외지에서 온
관광객들이다. 대진항의 적막함이 깨지고 생동감이 교차하기 시작했다. 촌옹들의 중심인 듯 했던 포구에 학교에서 돌아온 조무래기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그물 손질을 돕는 모습도 역동적인 포구 몇 장면 중 하나였다. 함경도 사투리를 쓰는 할아버지는 북한에 내려와 이곳에 터를 잡았고 아이는 이곳에서 태어난 원주민이니 남북의 삼대 가족이 행복한 가족공동체를 이뤄 살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무심히 또 다른 역사와 내일을 향한 삶의 풍경화를 그리며 살아가고 있었다. 글, 사진: 박상건(시인. 섬문화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