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발이 매섭게 휘날렸다. 연사흘 풍랑주의보로 군산항에 발이 묶였다. 새벽녘 군산 어시장을 돌아보려 숙소를 나섰다. 급격히 낮아진 추위 탓인지 이른 시간 어시장을 찾아온 손님은 한 아주머니뿐이었다. 내가 두 번째 방문자. 살아 파닥이는 물고기의 은빛 지느러미처럼 나는 섬으로 가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얼마 후 주의보가 풀렸다는 전갈이 왔다. 그렇게 고군산군도로 떠났다.
고군산군도는 군산시로부터 남서쪽 40㎞ 해역에 있다. 선유도, 신시도, 무녀도, 방축도, 관리도, 장자도, 말도 등 63개의 섬들이 군락은 이룬 한 폭의 수채화다. 옛 지명은 ‘군산도’. 해발 150m 낮은 구릉성 섬들이 여러 산처럼 무리지어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군산도는 고려 때 최무선이 왜구를 무찌른 진포해전의 기지가 있던 섬이다. 조선시대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설치했던 수군진영 명칭도 ‘군산진’이었다. 그러나 세종 때 진영을 군산으로 옮기면서 지명도 그대로 가져가는 바람에 옛 고(古)자를 붙여 고군산(古群山)이라 부른다.
고군산군도 섬들 중에 신시도, 야미도는 새만금간척사업으로 진즉 육지와 연결됐고, 선유도, 무녀도, 장자도 등도 뒤를 이어 다리로 연결됐다. 고군산군도 가장 북서쪽 끝자락의 섬이 말도다. 말도의 지명유래는 고군산의 가장 ‘끝 섬’이라는 뜻이다.
말도는 행정구역으로 군산시 옥도면 말도리. 옥도면은 군산시 서쪽 해상에 높이 100m 이하의 여러 섬들로 이뤄졌다. 옥도면에는 16개 유인도와 47개 무인도가 있다. 고군산군도 중심의 섬이다. 선유도해수욕장 등 풍부한 관광자원과 자연환경을 자랑한다.
옥도면 면적은 23.513㎢이고 2020년 12월 31일 기준으로 3394명이 거주한다. 주민들은 어업에 종사하고 홍어, 광어, 우럭, 멸치 등을 잡고 김, 피조개, 바지락 등을 양식한다.
말도는 군산에서 정기여객선이 1일 1회 운행한다. 섬 면적은 0.36㎢, 해안선 길이는 3㎞이다. 말도에는 55명이 거주한다.
말도는 대부분 구릉지이고 중앙부가 저지대인데 이곳에 작은 마을이 형성돼 있다. 바다는 대륙붕이고 연안수와 황해난류가 형성돼 조기, 고등어, 새우, 갈치 등 어족의 회유가 많아서 4∼5월이면 파시가 열렸을 정도로 전국의 어선들이 모여든 황금어장이다. 특히 백합, 바지락 등 조개류가 풍성하고 경지면적은 적어서 식량을 대부분 육지에서 조달한다.
말도항은 국가어항이고 습곡구조 지형은 천연기념물이다. 선캄브리아기는 고생대 이전 아주 오래된 지질시대를 말하는데 대부분 심한 변성작용으로 암석형태가 남아있지 않다. 그런데 말도 지층은 물결 자국 화석과 층층이 무늬를 쌓아 만든 습곡 형태가 보존돼 있다.
서해에서 군산과 고군산군도로 들어오는 첫 길목에 높이 솟은 것이 말도등대다. 말도등대는 말도항 바로 위에 위치한다. 말도등대는 100년 넘은 세월 동안 고군산군도 바닷길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등대는 일제강점기 1909년 11월에 일본이 대륙진출의 야망을 위해 설치했다. 말도등대는 백색 8각형 콘크리트로 만들었고 내부는 주물로 2단 나선형 사다리가 설치돼 있다.
원래 등대는 오랜 세월 동안 해풍에 부식돼 1989년 10월에 백색 원형 콘크리트 구조로 다시 만들었다. 등명기는 국산 프리즘렌즈 회전식 대형등명기다. 이 등명기가 뿜어내는 불빛은 37㎞ 해역의 선박에까지 당도한다. 등대 불빛 신호는 10초에 한 번 씩 반짝이면서 말도등대의 위치를 알려준다.
등대 아래는 절벽으로 기암괴석으로 이뤄졌고 특히 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신비의 천년송은 말도의 기상과도 같다. 이곳은 바다갈매기 서식처로 5월이면 수만 마리의 갈매기가 모여 장관을 이룬다.
말도 앞 바다에 십이동파도가 있다. 군산외항으로부터 서쪽으로 38km 지점이다. 무인도는 안산암으로 이뤄진 수직절벽의 바위섬이다. 10개 섬으로 이뤄져 일제강점기 한자표기로 열두동파도라고 부르다가 이후 읽기 쉬게 ‘십이동파도’로 부르고 있다.
서해 먼 바다에 뜬 십이동파도 서쪽은 절벽의 해식애가 신비롭다. 동쪽 내해의 섬은 완만한 경사를 이룬다. 배를 타고 이 무인도를 둘러보았는데 망망대해에 깊게 뿌리내린 그 당당함과 수 없이 달려다는 파도로 만든 파식대와 해식애 풍화혈의 자태는 온몸이 전율할 정도였다.
십이동파도는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종인 매가 서식한다. 보리장나무, 누리장나무, 붉나무, 청미래덩굴 등이 서식하고 소사나무 군락지가 있다. 해안가에 갯방풍과 해국이 자생한다. 바위에는 우뭇가사리, 미역, 파래 등이 파도에 나부끼며 자생 중이다.
말도 왼편에 흑도가 있다. 작은 바위섬이다. 응회암 바위는 아주 거칠고 섬 전체가 검보라빛 암석으로 돼 있어서 ‘검은여’라고도 부른다. 북쪽 끝 섬에 무인등대가 서있다. 이 무인등대는 이곳 망망대해 해역을 지나는 크고 작은 선박들에게 중요한 이정표 역할을 한다.
이밖에 해양생태와 섬 연구가들에게 각광받는 오도, 부도(장구섬), 무녀도(무능도), 악도, 송도, 사당도, 단등도 백포도 등이 주변 해역에서 출렁이고 있다.
말도 우측으로 어청도 항로와 이어지는 연도가 있다. 군산에서 북서쪽으로 23㎞ 지점이다. 겨울철 강한 북서계절풍이 몰아치곤 한다. 연도 정상에도 하얀 등대가 있다. 섬과 섬 사이를 오고가는 어선과 여객선 등 서해의 끝 섬과 인근 해역을 오가는 선박들에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항로표지다.
연도 최고봉은 188m이고 동남쪽을 제외하면 대부분 급경사 사빈해안이다. 남동쪽의 작은 섬들과는 사주로 연결돼 있다. 동쪽 해안 가운데에 옹기종기 마을을 이뤄 185명의 거주한다. 어민들은 연근해에서 삼치, 멸치, 새우를 잡고 해안에서 전복, 해삼을 채취하며 김 양식 등을 하며 생계를 잇는다. 동쪽 해안선을 따라가면 작은 길이 나있고 이 길은 포구로 이어진다. 이곳에서 군산항과 어청도, 말도를 오가는 정기여객선을 이용할 수 있다.
그렇게 고군산군도는 더 먼 외딴 섬까지 여객선을 통해 육지와 섬을 이어주고, 등대는 그 뱃길을 365일 밝혀주고 있다. 그렇게 아름다운 동행을 하는 섬으로 떠나는 길은 늘 이상향과 설레임으로 출렁인다. 검푸른 파도가 출렁일 때마다 아름다운 서해 섬의 묘미에 감동한다. 그렇게 오늘도 섬으로 떠나는 뱃고동 소리는 계속되고 있다.
고군산군도로 가는 여행과 인근 섬들과 연계 여행을 생각한다면 하루 1회 운항하는 배편을 고려해 넉넉한 일정을 잡아야 한다. 특히 해상의 날씨 변화에 민감한 먼 바다의 항로인 탓에 섬에서 며칠 동안 묶일 가능성까지 고려해 여유 있게 길 떠나야 한다.
말도등대로 가는 길은 먼저 군산으로 가야한다. 승용차는 호남고속도로 전주톨게이트(군산방향)~21번전용도로~군산여객터미널 코스가 있다. 서해안고속도로의 경우 동군산 톨게이트(군산방향)~21번전용도로~군산여객터미널 코스다. 전주군산간 자동차전용도로 서해안고속도로, 호남고속도로가 연결돼 있다. 대중교통은 고속버스가 서울~군산 간을 20~30분 단위로 운행한다. 기차는 용산~군산 간 1시간 단위로 운행한다.
문의: 옥도면사무소(063-442-0442), 군산연안여객선터미널(063-471-87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