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境의 아침> 꿈꾸는 격렬비열도/박상건
망망대해 그 너머/ 연사흘 흰 거품 물고
칠천만 년 꾹꾹 눌러 둔 고독이//
마침내 폭발하더니만, 깊고 깊어 푸른
그 그리움 더 어쩌지 못하고
파도소리 뜨겁게 퍼 올려/ 등대 불빛을 밝히는
서해 끝 섬//
온몸 뒤틀며 태어난 기억/ 파도소리 홰칠 때마다 귓전에 여전한데
두 눈 껌벅 껌벅/ 황소처럼 드러누워/ 또 무슨 꿈을 꾸는가//
대륙을 휘달리던 바람 소리를 키질하듯
산둥반도로 가던 장보고의 박동 소리를 풀무질하듯
독수리의 날개 짓으로 이 바다를 휘몰이 하는
해안선 주상절리로 아로새기고/ 틈틈이 해국을 피워 흔들면서
다시 비상을 꿈꾸는 섬//
멀리서 바라보면/ 유채꽃 원추리로 노랗게 출렁이고
등대지기 거닐던 동백 후박나무 밀사초 섶길 위로
포물선 그리며 푸른 바다에 수를 놓는/ 새들도 쉬어가는 삼형제의 섬
격렬비열도
- 박상건, ‘꿈꾸는 격렬비열도’
<수필가가 본 시의 세상>
가 보고 싶은 섬이 있다.
2015년 8월 31일 EBS에서 <한국기행>프로에 방영했으니 꼭 5년이 지난 셈이다. 25여 년 간 우리나라 섬을 찾아서 그들의 이름을 찾아 주고 그 존재를 알려주는 박상건(섬문화연구소장)시인의 노력이 있어 섬들이 빛나기 시작했다. 그 이름, 격렬비열도.
독도가 우리나라 동해의 끝이라면 격렬비열도는 서해의 마지막 끝 섬 즉 최서단에 위치한 섬이다. 지정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는 섬이면서 서해에서 가장 맑은 바다청정해역을 보유한 섬이고, 칠천만 여 년 전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형성된 섬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내 관심을 높였던 것은 매우 가기 힘든 섬이지만 갈 수만 있다면 보물을 품고 있는 섬이라는 점이었다. ‘풍화 열에 의해 벌집처럼 구멍이 나 있는 특이한 섬’이며 파랑에 의한 침식으로 해식 절벽(해식애)이 아슬하고, 보일 듯 말 듯 숨겨진 해식동굴이 비밀스럽다. 파식대 위에 작은 바위섬인 시 스택(sea stack)이 멋지다면 주상절리비경과 기암괴석이 신비롭다.
야생 동식물들과 괭이 갈매기의 보금자리를 마련해준 섬, 100년 이상의 동백나무 군락지가 밀림의 터널을 이루고 있는 섬. 비단벌레가 선택한 나무- 팽나무가 많은 섬, 귀한 후박나무가 있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갯메꽃, 갯장구채, 갯까치수영, 해국이 활짝 피는 섬이니 어찌 가보고 싶지 않을까. 거친 파도 헤치고 가서 그 내면의 소리, 듣고 싶어진다.
푸른 그리움 어쩌지 못하고 파도 소리로 퍼 올리며 비상을 꿈꾸는 섬, 격렬비열도. 너는 황소처럼 순한 눈망울을 가졌지. 독수리의 강인한 날갯짓으로 바다를 휘몰이 할 줄도 알지. 새들도 쉬어 가게 하는 너그러운 품성도 지녔어. 어쩌면……고독의 망망대해를 등대불빛으로 밝혀주기 까지 하는구나. <수필가 박모니카>
* <경상매일신문> 2020년 08월 30일자 기사 재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