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로 읽는 섬이야기] 비응도, 해당화 지다(5편)

할머니 얼굴에 핀 검버섯이 뿌리 채 뽑혀 말라가던 비응도의 해당화 같았다.
박월선 기자 2020-10-11 09:02:30

할머니가 구급차에 실려 가자 방안에 덩그러니 보따리만 남았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보따리를 풀었다. 보따리 속에는 커다란 수건이 돌돌돌 말아져 있었다. 수건을 풀자 또르르 또 하나의 수건이 구르며 방바닥에 펴졌다. 그러더니 그 위에 아기저고리가 있었다.

 

“어! 이게 뭐야?”

 

그때 아빠가 내 방문을 열었다.

 

“배냇저고리구나. 아기 옷이지.”

 

해당화(사진=섬문화연구소DB)

 

아빠는 배냇저고리를 들었다. 그런데 배냇저고리 속에 있는 것이 방바닥에 툭 떨어졌다.

 

“어? 손갈퀴네!”

 

내가 작은 손갈퀴를 들자 아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에그, 이게 보물이라고?”

 

몹시 실망스런 표정으로 나는 갈퀴를 들었다. 아빠를 보자, 무척 괴로워 보였다. 부엌으로 간 아빠는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러고는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으흐흐흐."

 

아빠는 자꾸자꾸 헛웃음을 쳤다.

 

웃음소리는 눈물을 머금고 거실 가득 떠다녔다. 그러더니 먼지처럼 구석으로 슬그머니 내려앉았다.

 

“아빠, 왜 그래. 괜찮아?”

 

“동이야. 이것이 무엇인지 아니?”

 

“갈퀴! 나도 알아. 할머니가 조개 캐는 거잖아.”

 

“그래, 조개 캐는 거지. 이 지겨운 갈퀴를 왜?”

 

아빠는“왜?”라는 말을 중얼거리며 베란다로 나가더니 비응도 쪽을 바라봤다.

 

우리 할머니는 새만금 방조제 사업이 한창인 비응도에 산다. 넓은 바다 한가운데에 작은 섬이다. 섬 뒤로는 군산에 있는 은파 유원지가 보이고, 섬 앞은 망망대해 바다가 있다.

 

여름마다 우리 가족은 비응도에서 휴가를 보냈다. 그곳에는 썰물이 되면 넓은 갯벌이 드러난다. 맨발로 갯벌 위를 걷는 감촉은 너무 보드랍고 좋았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새만금 방조제 사업 때문에 비응도가 무너지고 있다. 외부 사람들은 나라에서 보조금을 받으니, 이 섬을 벗어 날 좋은 기회라고 하지만 할머니는 아닌 것 같다. 비응도가 무너지기 시작하자 할머니의 마지막 남아 있는 힘도 함께 사라진 것 같다.

 

할머니는 비응도에서 백합조개를 캐서 아빠를 대학까지 보냈다고 늘 자랑삼아 이야기했다. 비응도로 열세 살에 시집와서 칠십 삼세까지 할머니는 바다와 함께 산 것이다.

 

바다가 방조제로 막히고 지금은 새로운 관광단지가 세워지고 있다. 이제는 할머니 기억 속에 박제되어 버린 비응도와 작은 손갈퀴만이 웃고 있었다. 갈퀴를 보자 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빠, 빨리 할머니한테 가자!”

 

처음처럼 갈퀴를 보자기에 묶고 아빠의 팔을 끌었다. 아빠의 우울한 얼굴이 불빛 아래서 번쩍 고개를 들었다.

 

병원에 도착하자 할머니를 간병하고 있던 엄마가 우리를 보고 놀란 표정으로 일어섰다.

 

“할머니, 보따리 두고 가면 어떻게 해?”

 

보따리를 할머니 품속에 넣어 주었다. 링거 바늘이 꽃힌 팔이 파랗게 멍들어 있었다. 할머니가 실눈을 뜨더니 초승달처럼 웃었다. 나는 엄마, 아빠의 손을 끌어다 할머니 손에 쥐어 주었다.

 

할머니 얼굴에 핀 검버섯이 뿌리 채 뽑혀 말라가던 비응도의 해당화 같았다. (비응도편 마지막회)

박월선(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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