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풍경이 있는 삶] 서정춘, ‘죽편・1’

칸칸마다 숱한 사연 안고 푸른 하늘 향하는 삶의 기차
박상건 기자 2020-07-03 09:07:37

여기서부터, - 멀다

칸칸마다 밤이 깊은

푸른 기차를 타고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년이 걸린다

 
- 서정춘, ‘죽편(竹篇) 1-여행’ 전문

 

시란 본디 짧은 형식이지만 서정춘 시인의 시는 짧으면서 강한 울림이 있다. 메시지는 서정적 가락을 타고 풍경화로 연출된다.

숱한 사연들이 한 매듭 한 매듭 맺고 비워지면서 성장하는 대나무는 비운만큼 더 높은 하늘로 푸른 꿈을 키운다. 대나무는 그렇게 백 년에 한 번 꽃을 피우고 죽는다. 

시인은 대통 속 매듭을 ‘칸칸마다 밤이 깊은 푸른 기차’로 은유했다. 키가 커가는 과정은 어두운 터널을 지난다. 깊고 깊은 밤은 경건하고 경외감이 든다. 어둔 터널을 걷는 과정의 성장통. 그 터널을 지나는 기차는 ‘푸른 기차’다. 대나무는 생명력 넘치는 동적 대상물로 전환됐다. 

‘죽편1’에 ‘여행’이라는 부제가 붙은 탓에 시를 읽는 재미가 쏠쏠하고 상상력도 더욱 확장된다. 인생은 여행길이다. 대나무가 하늘로 가는 과정은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가는 여행길이다. 이 한 문장에서 외갓집 가는 어린 시절이 스쳐 지나고 고요하고 적막한 산촌 혹은 강촌의 대숲마을이 연상된다. 서정춘 시인의 시는 이처럼 영상미와 다큐처럼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시는 언어로 만든 집이고 가락으로 읊조리는 공간이다. 언어와 가락이 기쁨과 행복의 순간을 우려내고 빚어내고 묘사한다. 그래서 ‘죽편1-여행’은 짧지만 깊이가 있는 여행시다.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년이 걸린다’라는 문장에서 풍진세상을 살아가면서 겪는 여러 곡절이 그려지고 마침내 우듬지에 꽃 피는 것처럼 삶의 절정과 대단원이 대나무 풍경과 맞닿았다. 

서정춘 시인은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으로 꼽혔다. ‘죽편1-여행’은 가객 장사익이 노래로도 불렀다. 일직이 마부의 아들로 태어난 시인이 ‘소리2’라는 제목의 작품에서 반전의 시 한편을 선보였다. 전쟁터 북소리 혹은 매우 빠르고 강렬하며 힘이 철철 넘쳐나는 말발굽 소리와 오버랩 된다. “말이 달린다/다리다리 다리다리/말이 달린다/디귿리을 디귿리을/말이 달린다/ㄷㄹㄷㄹ” 

1941년 전남 순천에서 태어난 신문배달 소년은 어느 날 영랑과 소월의 시집을 접하고 필사하면서 시인의 길과 접선했다. 1968년 <신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고 시집 ‘죽편’, ‘봄, 파르티잔’, ‘귀’, ‘물방울은 즐겁다’ 등을 펴냈고 박용래문학상, 순천문학상, 최계락문학상, 유심작품상, 백자예술상 등을 수상했다. 

박상건(시인.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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