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에세이] 하이난의 날들

“인간이 지평을 넓히지 않으면 천국이 무슨 소용인가”
섬관리자 기자 2019-12-22 14:22:24
하이난

내 책상 위에는 평소 내가 마음의 표지로 삼고 있는 어떤 구절과 어떤 사진과 어떤 영화 포스터가 하나씩 붙어 있다. 마음의 표지(?)라고 하니 약간 구태의연하긴 하지만 어쨌거나 지금까지 내 의식과 사고에, 무엇보다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긴장감을 더해주는 구절인데 다음과 같다. “인간이 지평을 넓히지 않으면 천국이 무슨 소용인가” 인간이...지평을...넓히지 않으면 천국이, 그렇다 나는 이 지점에서 천국이, 이렇게 발음하거나 눈을 쫒아 읽은 뒤 무슨 소용인가 하고 반문한다.

내 책상 위 사진은 20세기를 대표하는 비디오의 거장 백남준이 샬롯 무어맨과 함께 존 케이지의 음악을 연주하는 모습을 담은 것이며, 또 하나의 영화 포스터는 내가 제작하고 내가 연출하고 내가 주연한 'A Better Day- 하이난의 날들'이다. 일인삼역을 한 이 영화 하이난은 중국 남쪽 끝 해남도 섬을 뜻한다.

하이난과의 인연은 사실상 뜻밖이었다. 지난 해 여름 나는 우연찮게 캐스팅을 담당하는 지인 박실장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지금도 배우로 활동하고 있으니 배우임에 틀림없지만 당시 나는 감독 데뷔를 위해 시나리오를 쓰는 힘겨운 나날을 보내던 참이었다. 그런 와중에 박실장은 머리도 쉴 겸 바람도 쐴 겸 중국 하이난을 다녀오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해왔다. 내용인즉 중국 중견감독인 유심강 감독이 드라마를 찍는데, 잠깐 출연하면 하이난 관광에 별 다섯 개 짜리 호텔에도 머물 수 있는 특혜(?)가 있다는 것이다. 또 혹시 일이 잘 돼 중국 드라마로 떠서 한류바람(?)도 일으킬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정확히 일주일 뒤 나는 하이난 산야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있었다. 새벽에 도착한 하이난 섬은 아열대 기후로 후끈 달아올라 맥을 못 추게 만들었지만 다음날부터 내리기 시작한 집중 호우는 촬영을 쉬게 만들어 일주일 내내 장쩌민도 다녀갔다는 별 다섯 개짜리 객실에서 창 밖을 내다보며 지냈다. 야자수와 하루종일 내리는 빗줄기. 알아들을 수 없는 티브이 소리로 지루한 밤낮을 보내야 했다. 섬에 갇히고 호텔에 갇힌다는 것은 즐거운 고통이었으나, 촬영 일자는 구체적으로 잡히지 않고 귀국은 날씨 탓에 딜레이됐다.

시나리오 정리도 더디고, 창 밖을 내다보기도 지루할 무렵, 나는 가지고 간 디지털 캠코더로 내 일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게 '하이난의 날들'이다. 내용은 다큐식이지만 내 창작욕구로 인해 픽션까지 가미했는데, 다행히 중국인들의 친절한 도움과 협조가 없었다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이난 섬은 동양의 하와이로 불린다. 세계2대 청정지역으로 알려져 있으며 흰 백사장과 아름다운 리조텔, 푸른 녹지로 여행객들의 찬사를 받는 곳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지인들의 외국인들을 대하는 태도와 예의는 타국이나 타 도시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그들은 친절하고 근면했으며 정직하고 삶을 즐길 줄 아는 여유로움을 가지고 있어 부러울 정도였다. 하이난 섬에는 해구와 산아시 두 개의 도시가 있는데 내가 머문 산아시는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중국의 여러 소수 민족이 집단적으로 모여 사는 곳이었으나 그들의 얼굴과 표정에서 건강함을 읽을 수 있어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들은 어디에서나 ‘니 하오’를 입에 달고 살았으며 평생 걱정거리가 없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내가 거닐던 긴 백사장의 파도, 하루종일 내리던 비, 한밤중 뇌성에 흐느적이던 야자수. 비가 개인 뒤 사람들이 짓던 환한 웃음 등으로 하이난은 기억된다.

촬영 마지막 날 스태프들과 더불어 같이 “고생했다”며 먹던 맥주 맛은 하이난 아니면 맛볼 수 없는 내 생애 기쁜 날의 맥주맛이었다고 해야 할까. 기회가 주어지면 다시 가고 싶은 그곳이 하이난 섬이다. 

백학기(시인. 논설주간)

섬TV

서정춘, ‘랑’

서정춘, ‘랑’

랑은이음새가 좋은 말너랑 나랑 또랑물 소리로 만나서사랑하기 좋은 말 - 서정춘, '랑’ 전문 팔순 고갯마루의 서정춘 시인이 제 7시집 ‘랑&rsq
박화목, '보리밭'

박화목, '보리밭'

보리밭 사이길로 걸어가면뉘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옛 생각이 외로워 휘파람 불면고운노래 귓가에 들려온다 돌아보면 아무도 보이지 않고저녁
日・中, 우리바다 넘본 이유

日・中, 우리바다 넘본 이유

대한민국은 3면이 바다인 해양민족이다. 늘 푸른 바다, 드넓은 바다, 3000여 개가 넘는 섬들은 우리네 삶의 터전이자 해양사가 기록되고 해양문화가 탄
서해 끝섬, 격렬비열도

서해 끝섬, 격렬비열도

서해 끝섬, 서해의 독도인 격렬비열도. 정부가 국무회의를 통해 격렬비열도를 국가관리연안항으로 지정한 7월 4일이 ‘격렬비열도의 날’이다.
우리나라 최남단 섬 마라도

우리나라 최남단 섬 마라도

우리나라 최남단의 섬 마라도. 남제주군 모슬포항에서 배를 타고 남쪽으로 30분 정도 소요된다. 푸른 물결 퍼 올리며 달리는 배의 저편에 한 폭의 수채
서해 최북단 백령도 해안선 풍경

서해 최북단 백령도 해안선 풍경

서해 최북단의 섬, 백령도. 백령도는 북위 37°52′에 걸쳐 있는 섬으로 2㎞ 앞이 38선이다. 백령도는 인천항에서 북으로 222km 해상에 있다. 쾌속선으
(7) 푸른 하늘, 푸른 잎의 미학

(7) 푸른 하늘, 푸른 잎의 미학

봄이 왔다. 푸른 하늘이 열리는 청명을 지나 본격적인 농경이 시작되는 곡우를 앞두고 봄비가 내렸다. 농어촌 들녘마다 새싹이 무럭무럭 자라나 올 농
(7) 떠나가고 싶은 배

(7) 떠나가고 싶은 배

코로나로 모두가 묶여 있은 세상. 떠나고 싶다. 묶인 일상을 풀고 더 넓은 바다로 떠나고 싶다. 저 저 배를 바라보면서 문득, 1930년 내 고향 강진의 시인
(6) 호미와 삽

(6) 호미와 삽

소만은 24절기 가운데 여덟 번째 절기다. 들녘은 식물이 성장하기 시작해 녹음으로 짙어진다. 소만 무렵, 여기저기 모내기 준비로 분주하다. 이른 모내
오세영, ‘바닷가에서’

오세영, ‘바닷가에서’

사는 길이 높고 가파르거든바닷가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보아라.아래로 아래로 흐르는 물이하나 되어 가득히 차오르는 수평선.스스로 자신을 낮추는
송수권, ‘적막한 바닷가’

송수권, ‘적막한 바닷가’

더러는 비워 놓고 살 일이다.하루에 한 번씩저 뻘밭이 갯물을 비우듯이더러는 그리워하며 살 일이다.하루에 한 번씩저 뻘밭이 밀물을 쳐 보내듯이갈밭
그 섬에 다시 갈 수 있을까

그 섬에 다시 갈 수 있을까

아마추어 사진동호회의 총무, K의 전화를 받은 건 며칠 전이었다. 모처럼의 통화였지만 K의 목소리는 어제 만나 소주라도 나눈 사이처럼 정겨웠다. &ldqu
하와이 제도 <7> 하와이 아일랜드

하와이 제도 <7> 하와이 아일랜드

하와이 아일랜드는 하와이 제도에서 가장 크고 제일 어린 섬이다. 빅 아일랜드라는 별명에 걸맞게 다른 하와이의 섬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 거의 두 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