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담배회사를 상대로 오랜 동안 소송 중이다. 과연 국민 눈높이에 맞는 판결이 나올지 주목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12년째 담배소송 중이다. 상대 담배회사는 KT&G(전 한국담배인삼공사), 말보르 등 제조사 한국필립모리스, 던힐 담배 제조사 BAT코리아(현 BAT로스만스) 등이다.
질병관리청·건보공단 통계에 따르면 2022년 기준으로 흡연 사망자 수는 7만2689명. 2020년 6만1000여 명에서 2년 사이 18% 증가했다. 흡연으로 사망은 생산성 손실, 질병 치료 의료비, 간병비 등 사회경제적 비용은 2022년에만 13조 6316억 원에 이른다.
이런 이유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지난 2014년 4월, 3개 담배회사 KT&G, 한국필립모리스, BAT코리아를 상대로 약 533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손해 배상액은 매일 1갑씩 20년 또는 30년 이상 흡연한 뒤 폐암과 후두암을 진단받은 환자 3465명에게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지급한 진료비 액수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공단은 1심에서 패소했으나 지난 2020년 12월 항소장을 제출해 항소심 12차 변론까지 이어진 상태이다.

공단은 지난달 22일 16시 서울고등법원 379호 법정에서 열린 담배소송 제12차 변론에서, 공단의 직접 손해배상 청구권을 포함해 지금까지 주요 쟁점 전반에 대한 종합적 입장을 적극적으로 표명했다.
공단은 담배회사들이 수십 년에 걸쳐 흡연의 유해성과 중독성을 의도적으로 은폐하고, 소비자를 기만하며 막대한 이익을 챙긴 사실을 다시 한 번 명확히 지적했다.
공단은 담배회사가 제조하는 담배는 본질적으로 중독성과 심각한 건강 위해성을 내포하고 있음에도, 과거 이를 정확히 알리지 않은 것에 대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저버린 중대한 문제이고, 담배회사가 흡연중독 피해를 ‘개인의 선택’으로 돌리려는 주장은 국민을 두 번 기만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과학적 근거에 의해 흡연과 인과관계를 명확히 하고자 대상 암종을 ‘소세포암’과 ‘편평세포암’으로, 흡연기간이 ‘30년 이상, 20갑년(하루 한 갑씩 20년 흡연) 이상’인 대상자로 엄격히 선별했기에 흡연과 암 발생의 인과관계만큼은 의학적 진실과 국민 상식에 부합, 이를 인정돼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이날 변론에서 공단은 3차 주요 쟁점인 공단의 직접 손해배상 청구권에 대해 국민들의 보험료가 주요 재원인 건강보험 재정은 당연히 법적으로 보호할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담배로 인해 보험급여의 대상이 되는 질병이 발생하고 그에 대한 요양급여가 실시돼 원고에게 실제로 재산상 손해가 발생된 것은 법익침해에 해당하는 것이 명백하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공단은 흡연과 암 발생의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위해 대한폐암학회와 호흡기내과 전문의 의견서, 담배 중독에 대해 한국중독정신의학회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의견서, 대한금연학회에서 실시한 담배중독 감정서와 이들 중 일부에 대한 흡연경험 심층사례 분석 결과, 공단 내부 연구결과 등 인과관계를 명료하게 뒷받침하는 22건의 추가 증거자료를 제출했다.
담배중독 감정은 소송대상 생존자 중 13명을 대상으로 과거 흡연이 가장 활발했던 시점 기준으로 감정이 됐다. 그 결과 기억력이 양호한 12명 전원이 중등도 이상의 담배 중독인 것으로 확인됐다. 담배중독 감정 방법(Fagerstrom Test)은 흡연 횟수, 니코틴 중독 정도를 0~3점(낮은 의존도), 4~6점(중간 정도의 의존도), 7~10점(높은 의존도) 등으로 구분해 설문 조사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담배 니코틴 의존도를 평가하는 데 학계에서 주로 사용하는 연구방법이고 여러 논문을 통해 타당도와 신뢰도가 검증된 바 있다.

특히 대한간학회는 “흡연과 질병의 인과 관계는 과학적으로 확립된 사실”이라면서 “흡연은 심혈관과 뇌혈관, 폐 질환의 주요 원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간 질환의 주요 악화 요인”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단의 담배소송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덧붙였다. 한국건강검진학회, 대한비만학회, 대한내과학회 등도 흡연이 초래하는 국민 건강 위해와 건강 보험 재정 누수가 크다면서 공단의 소송을 지지한 바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정기석 이사장은 “흡연과 암 발생의 인과관계에 대한 의학계의 수많은 의견과 국민 등 각계각층의 진심 어린 호소를 더 이상 재판부가 간과해서는 안 된다”면서 “어디에서도 구제받을 수 없는 우리나라 흡연피해자 현실에 대해서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직접 의견을 진술했다.
정기석 이사장은 40년 경력의 호흡기내과 전문의이다. 정 이사장은 “같은 의사로서 국민의 건강을 담보로 이러한 비윤리적인 행위가 발생된 것에 대해 참담한 심경을 느낀다”면서 동업계 의사들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비윤리적 행위’라 함은 국내 일부 의사들이 12차 변론 과정에서 “강한 역학적 관련성이 있는 경우에도 폐암의 원인이 흡연이라고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 “자기통제 실패 관점에서 담배에 비해 SNS의 중독성이 더 크다”는 등의 주장을 담은 의견서를 담배회사 측을 통해 법원에 제출한 행태를 말한다.

정 이사장은 “이 싸움은 결코 공단만의 싸움이 아니며, 담배회사의 책임을 끝까지 묻기 위해 국민적 관심과 지지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담배회사 소송과 관련해 해외 사례를 보면 1994년부터 미시시피주 등 50개주가 담배회사와 소송을 벌여 담배회사들이 25년간 2560억 달러를 배상키로 합의했다. 1999년 미국 연방정부가 “담배회사들이 50년간 공모해 흡연의 유해성에 관한 정보를 은닉해 대중을 속여왔다”며 제기한 소송에서 담배회사들의 사기 공모 혐의가 인정된 바 있다.
캐나다에서는 2001년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등 여러 주정부가 담배회사를 상대로 의료비 반환청구소송을 냈고, 2013년 5월 온타리오주가 500억 달러 배상 판결을 받아낸 사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