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습(大私習)놀이는 판소리, 농악, 무용, 기악, 시조, 활쏘기 등 국악과 민속놀이 경연을 말한다. 조선시대에 말을 타고 활을 쏘던 대회에서 그 유래를 찾는데, 조선 말기부터 여러 가지 놀이와 판소리 등이 곁들여져 왔다. 현재의 판소리 등 국악경연대회 상징처럼 된 것은 1975년부터 부활된 전주 대사습놀이로 이 경연대회는 판소리와 무용 등 최고의 등용문으로 인정받으며 그 명맥을 잇고 있다.
지난 3일 제50회 전주대사습놀이에서 재일 한국전통무용가 김미복(55) 상명대 교수가 영예의 무용 명인부 장원을 차지했다. 심사위원 전원으로부터 100점 만점에 99점을 받은 수상자, 가히 하늘이 내린 그 영광의 수상자를 지난 18일 동국대 앞 커피숍에서 만났다.
김미복 교수는 전남 강진에서 태어났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일찍 일본으로 건너가 생계를 꾸리던 언니를 뒤늦게 찾아가 일본 생활을 시작했다. 그렇게 그는 늦은 나이에 인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세종대에서 무용학 석·박사 과정을 졸업했다.
인생 출발은 늦었지만 그에게는 늘 잠재적 예술 DNA가 온몸에 꿈틀거리고 있음을 알았다.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무용을 시작한 그는 장단을 하나 하나 배우며 춤의 매력에 푹 빠졌다. 넉넉하지 못한 집안 사정이었지만 부모님도 그런 딸에게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동원해 지원했다.
그의 대표 춤이랄 수 있는 살풀이춤은 남도무악(南道巫樂)에서 파생된 것이다. 살풀이는 ‘살을 푼다’, ‘액을 푼다’는 의미이다. 남도사람들은 운명에 타고난 흉살을 미리 피하도록 살풀이굿, 음악에 맞춰 굿판에서 종교적 의례로 이 살풀이춤을 췄다.
그가 태어난 강진은 산과 들과 강 그리고 강진만과 마량포구로 이어져 마침내 섬들이 출렁이는 자연지형이다. 섬에는 무수한 예술적 상징기호들이 나뿌낀다. 거센 비바람에도 늘 푸른 섬, 부서지면서도 비우는 물보라처럼 솟구치는 춤사위의 파도, 썰물과 밀물로 수평을 이루는 균형과 치유의 바다, 그렇게 무위자연은 그곳을 삶터로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예술적 혼과 무대로 동행한다.
이를테면 김영랑 시인의 ‘찬란한 슬픔’의 정한(情恨)은 남도정서를 한으로 응축하고 가락으로 재현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라고.
예술인들은 그것을 시어로 길어올리고, 색채적 감흥으로 그림을 그리고, 눈발처럼 나부끼는 가락으로 춤을 춘다. 저마다 예술적 표현 방식은 달라도 남도의 한과 예술은 그렇게 깊고 진하고 잔잔하고 은은하게 펼쳐진다.
특히 살풀이춤은 그런 한의 응어리를 풀어내는 장단과 춤동작이 정적이면서 동적인 곡선미의 흐름을 타고 파노라마처럼 펼친다. 그렇게 살풀이는 자연공간에서 눈물짓고 우리네 삶을 위로하면서 하나의 살붙이로 호흡한다. 긴 강줄기가 한 바다에서 만나듯, 삶과 예술이 한 호흡으로 한바다로 카타르시스를 창출한다.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모란이 피기까지는/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노래한 가락처럼 말이다.
김미복 교수는 그런 한의 장단 하나, 하나에 몰입하고 그럴수록 자신의 생각과 사상이 춤으로 완성돼 가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김미복 교수는 무형문화재 제15호 승무 이수자로서 일본에서 가나이후미에(金井 芙三枝) 스승과 고인이 된 ‘한량무’ 대가로 불리는 고 임이조 선생에게 사사받았다.
특히 그는 “고 임이조 스승께 이 기쁜 수상 소식을 전할 수 없어 안타깝다”는 말을 반복하면서, “오늘이 있기까지 한국무용의 근본을 가르쳐주셨고 오늘의 토대를 쌓게 해준 스승의 은혜에 늘 감사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춤의 근본을 흉내, 닮아가려는 내 모습을 본다.”면서 “궁핍한 생활이 나를 겸손하게 사는 법을 일러주고, 내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를 늘 고민하게 해준다. 그 때마다 스승을 떠올린다”고 말했다.
이번 제50회 전주대사습놀이 경연대회에서 심사위원을 맡았던 천명선 선생은 김미복 교수 심사평을 다시 부탁하자 “춤사위가 아주 정갈하고, 표현이 잘 전달됐고, 그 가운데 지금까지 승무의 북가락이 제일 정확하고 혼신이 다 담긴 작품”이라고 극찬했다. 그러면서 “북가락 가락이 인생사 스토리가 넘나들고, 마침내 넘어서는 천사의 울림이었어요. 심사한 것 중에서 최고의 북가락이라고 평가해도 흠이 없을 정도였어요. 앞으로도 더욱더 김미복 같은 제자들이 많이 탄생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스승을 잘 만나 그 제자도 정말 수준급이고 내내 행복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미복 교수는 국가무형문화재 제15호 승무예능보유자 법우 송재섭 스님으로부터 승무를 이수 받고 활동 중이며, 천명선 선생과도 춤 공부와 한일문화교류 촉진, 양국 후진양성을 위해 일본과 한국을 오가면서 활발한 교류를 병행하고 있다.
김미복 교수는 제11회 전국전통예술 무용대제전대회 종합대상 국회의장수상, 제12회 전국국악대제전 전통무용부문 문화체육장관상 수상 등 다수의 대회 수상 경력과 함께, 상명대 무용학 교수, 사단법인 우리춤협회 국제교류문화위원장, 김미복무용연구소, 이룸무용단 대표, 사단법인 일한전통무용협회 대표로 활동 중이다.
박상건(시인.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