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 신경림, ‘갈대’ 전문
1956년 <문학예술>에 발표된 이 시는 시인이 스무 살 때 쓴 처녀 작품이다. 시인은 충주고 시절, 국어시험시간에 시험지 대신 시를 제출할 정도로 문학 열병이 뜨거웠다. 대학 때 등단 후 지독한 생활고로 10년간 문단과 멀어진 채 낙향과 귀경을 반복하며 막노동과 등짐장수, 번역, 학원 강사 등을 했다.
“역경의 세월이었네요?”라고 말하자, 시인은 “무슨 놈의…그 시절 고생 안 해본 사람 어딨어?”라고 반문했다. 질기고 쓰디쓴 세월은 앞서 지면에 소개한 농무, 목계장터, 별 등 농익은 걸작으로 빚어졌다. 첫 시집 ‘농무’는 ‘창비시선’ 1호로 출간됐다.
시인의 작품세계는 농민 등 민초의 삶을 소재로 자연과 접점을 이루는 인간의 보편적 쓸쓸함, 고단함, 고독함이 민요 가락으로 엮어진다.
‘갈대’는 갈색이고 습지에 서식한다. 억새는 산에서 무리를 이뤄 서식하고 은빛 물결이 장관이다. 모두 억세게 살아가는 삶을 은유하는 점에서 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굳이 구분할 필요는 없다. ‘갈대’는 사유하는 삶, 연약한 인간을 의인법으로 묘사한 철학적 서정시에 해당한다.
갈대는 흔들린다. 속울음 울며 사는 게 인생이다. 그렇게 흔들리며 사는 인생길, 알고 보면 “저를 흔드는 것이”,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을, 그것은 정녕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까맣게 몰랐다.” 젊은 날엔 그랬다. 꺼이꺼이 속으로 울고 흔들렸다. 그렇게 켜켜이 연륜이 쌓이고서야 알았다. 그것이 우리네 인생이란 것을.
‘조용한 속울음’은 미처 알지 못했던 근원적 고통과 고독의 파편이다. 그 울음은 타의가 아닌 나, 인간의 근원적 슬픔에서 용솟음친 것이다. 우리는 세상에 울음소리로 잉태했고, 살며 저물어가며, 허무하고 고독한 삶과 만날 수밖에 없다. 인간은 본디 불완전한 존재임으로. ‘갈대’는 그런 인간의 숙명적 비애를 노래한다.
신경림 시인은 1936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나 동국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1956년 <문학예술>로 등단했고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을 지냈다. 시집으로 ‘농무’, ‘새재’, ‘남한강’,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평론집 ‘문학과 민중’, ‘삶의 진실과 시적 진실’, 산문집 ‘바람의 풍경’, ‘민요기행’ 등이 있다. 만해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4.19문화상, 단재문학상, 대산문학상, 공초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글‧사진: 박상건(시인,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