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가을이 가고 그해 겨울이었다. 대기는 차가웠고, 차가운 대기로 가득 차 있는 광주에서의 날들은 여전히 내게 쓸쓸했다. 어디 섬으로라도 훌쩍 떠났다가 돌아오고 싶었다. 그런 마음으로 마악 겨울방학을 맞이할 즈음이었다. 몇몇 학생들이 내게 1박 2일의 국내여행을 제안했다. 일주일에 한 차례씩 모여 나와 따로 공부를 해온 학생들이었다. 학생들이라고는 하지만 나이가 많아 친구들이나 다름없었다.
잠시 논의를 하던 친구들은 여행지를 완도, 완도 중에서도 청산도로 결정했다. 광주에서 완도로, 완도에서 청산도로 여행의 일정을 잡자는 이들의 제안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했다.
청산도는 소설가 이청준 원작의 영화 ‘서편제’의 촬영지로 유명했다. 김명곤(아버지)과 오정해(딸)와 김규철(아들)이 저 멀리 언덕 위에서 돌담이 있는 황톳길을 따라 천천히 내려오면서 북소리에 맞춰 선창하고 후창하는 ‘진도아리랑’ 가락이 우선 먼저 가슴을 따뜻하게 했다. 따라서 약속된 날까지 청산도의 겨울 풍광을 즐길 생각으로 가슴이 풍요로워지는 것은 당연했다.
막상 청산도를 향해 출발을 한 날엔 부슬부슬 겨울비가 내렸다. 이런 날의 여행은 그 나름으로 또 다른 운치가 있었다. 완도에 도착한 우리는 군청 주변의 어느 식당에서 별로 특별하지 않은 점심부터 먹었다. 그런 다음 ‘해신’ 등을 찍은 드라마 촬영지 몇 군데를 둘러보았다. 함께 간 학생들에게는 드라마 촬영을 위해 지은 세트장 관람도 그런 대로 공부가 되는 듯했다.
여객선은 우리 일행과 함께 차까지 챙겨 실었다. 날씨는 개었지만 여전히 하늘은 흐렸는데, 크게 춥지는 안았다. 여객선이 출발하자마자 우리 일행은 갑판에 올라가 완도의 선착장 주변 어시장에서 준비해간 소라회 등 몇 가지 안주를 꺼내놓고 소주부터 한 잔 입에 털어 넣었다. 몇 순배가 이루어지자 온몸이 홧홧해지고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여객선은 채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면소재지인 도청리 항구에 도착했다. 곧바로 우리는 차를 몰아 예의 돌담이 있는 황톳길 언덕으로 향했다. 이내 ‘서편제’ 그 아름다운 장면이 두 눈 앞에 확, 펼쳐졌는데, 무엇보다 한겨울임에도 파랗게 자라고 있는 보리밭이 인상적이었다.
황톳길 언덕 오른쪽에서는 고즈넉한 갯가 마을이 품에 안겨왔다. 황톳길 언덕 왼쪽에서는 붉은 지붕들로 꽃피어 있는 당리 마을이 손짓을 했다. 누군가 진도아리랑을 선창하자 모두들 그를 따라 진도아리랑을 후창했다. 사진을 찍는 일행들, 영화 얘기, 소설 얘기를 하는 일행들……, 일행들의 재잘거림은 당리 마을에 이를 때까지도 그치지 않았다.
돌담을 둘러치고 있는 당리 마을의 오밀조밀한 집들 중에는 ‘서편제’에서 아버지한테 판소리와 북을 배우는 자식들의 장면을 찍은 세 칸 초가도 있었다. 이 마을 오밀조밀한 집들의 울안에선 유난히 유자나무가 많았다. 어떤 집의 유자나무에는 한 겨울인 데도 어린애 머리통만한 노란 열매가 달려 있어 육지에서 온 사람들을 경이롭게 했다.
당리를 떠나 섬을 한 바퀴 돌자 하늘이 파랗게 벗겨지는 것이 보였다. 읍리 앞개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갯돌을 모아 탑을 쌓아올리며 잠시 행복했던 유년시절로 돌아가기도 했다. 원래 일박을 하기로 한 곳은 지리 해수욕장 근처였다. 그러나 너무 늦지 않게 읍리 앞개 갯돌밭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리 해수욕장에 도착했을 때는 벌써 저녁 무렵이었다. 완전히 해가 뜨지는 않았지만 붉은 낙조가 만드는 황혼의 아름다움을 함께 나눌 수는 있었다.
우리 일행 외에 이곳 지리 해수욕장으로 여행을 온 사람은 전혀 없었다. 자연스럽게 지리 해수욕장 전체가 우리 일행의 차지였다. 그래서일까. 겨울밤의 청산도 지리 해수욕장은 조금쯤 쓸쓸했다. 멍석만큼 크고 둥근 달이 휘황찬란하게 떠 있었지만 쓸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쓸쓸한 마음을 버무려 지은 저녁 식사는 그러나 제법 풍성했다. 무엇보다 민박집 아줌마한테 얻어온 달고 시원한 맛의 봄동이 혀를 즐겁게 풀어헤쳤다. 완도 선착장 주변 어시장에서 준비해간 광어, 돔, 도다리 등의 생선회와, 생선회에 곁들인 양주 맛은 아예 마음까지 풀어헤쳐버렸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바닷가로 나오니 엷은 안개 속을 헤집으며 달빛이 온통 삐약거리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보름 어간이었다. 희뿌연 무리들을 거느린 채 달은 구름 속을 넘나들며 샛노란 병아리빛을 오종종 토해내고 있었다.
해수욕장 모래밭에는 걸터앉기 좋은 조각배가 놓여져 있었다. 누군가 목청을 다듬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금세 합창의 목소리가 바닷가 모래밭을 두드려 댔다. 합창의 목소리는 화사한 달빛을 밤하늘 가득 병아리 떼로 흩어뿌렸다.
아침에 눈을 뜨니 주르륵거리는 빗소리들이 먼저 들려왔다. 빗속을 뚫고 우리 일행은 청산도의 몇 가지 유적을 더 찾아 나섰다. 가장 인상에 남는 곳은 부흥리의 ‘구들장 논’이었다.
밭농사를 위주로 살아온 이곳 사람들이 논농사를 짓기 위해, 다시 말하면 쌀밥을 먹기 위해 특별히 고안한 것이 ‘구들장 논’이었다. 튼튼하게 쌓은 축대 위에 넙적한 돌을 깔고 물이 빠지지 않게 진흙을 다진 다음 그 위에 흙을 펴고 모를 심는 방식을 고안한 것이었다.
겨울의 청산도를 떠나오며 내가 줄곧 생각한 것은 봄의 청산도였다. 유채꽃이 피고 보리가 익는 봄이 오면, 종달새가 아지랑이와 함께 날아오르는 봄이 오면 다시 한번 와야지, 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