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시 남구 장생포는 근대 포경산업의 중심지였다. 장생포는 귀신고래가 많이 유영하는 ‘귀신고래회유해면’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장생포는 밍크고래, 참고래 등 다양한 고래 종이 다수 서식해왔다.
우리나라 국민은 전통적으로 고래 고기를 먹지 않았다. 한반도에서 고래잡이가 시작된 것은 1848년 미국에 의해서다. 해방 전까지 국내에서 생산된 대부분의 고래는 일본으로 수출됐다.
광복을 맞아 우리도 우리 자본으로 고래잡이를 했고 1970년대 말 장생포 고래잡이는 전성기였다. 당시 20여척의 포경선과 1만 여명의 거주한 포구마을이 형성됐다.
1980년 고래 개체수가 감소하고 일부 종이 멸종위기를 맞았다. 1986년 국제포경위원회(IWC)가 상업포경금지를 결정하면서 고래잡이도 중단됐다. 장생포사람들도 하나 둘 떠나갔고 그 자리에 울산공업단지가 들어섰다.
울산시는 그 때 그 시절의 장생포 고래문화를 계승하고자 매년 9월에 고래축제를 연다. 축제는 고래문화특구인 장생포 일원에서 펼쳐지는데 고래와 반구대암각화 등 고래콘텐츠로 주변 시설과 환경의 소중함을 인식하는 캠페인 그리고 음악 등이 어우러지는 페스티벌로 진행한다.
장생포고래문화마을은 울산 12경 중 하나다. 고래마을은 고래생태체험공원으로 조성됐고 장생포는 ‘장생포 고래문화특구’로 지정됐다. 고래문화특구에는 장생포고래박물관, 장생포고래체험관, 장생포고래마을이 있다.
장생포고래박물관 이만우 관장은 “국내 유일의 고래박물관으로써 다양한 고래체험학습 공간으로 거듭나는 중”이라면서 “1996년 포경이 금지된 이래 사라져간 포경유물을 수집, 보존, 전시하고 해양생태계 체험 공간 제공, 해양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생포고래체험관은 지난 2009년 11월에 3층 규모로 고래 전통문화 보존과 해양생태문화체험의 기반조성을 위해 건립됐다. 우리나라 최초의 돌고래 수족관과 전시관, 포경 생활상을 볼 수 있다. 특히 2층에는 어린이들이 입체영화 속에서 고래를 만날 수 있는 4D 영화관이 있다.
박물관에서 나와 모노레일을 탑승하면 장생포 연안을 조망할 수 있고 고래문화마을에 도착해서는 970년 장생포 옛 마을의 삶의 현장을 만날 수 있다. 박물관 앞에서 승선하는 고래바다여행선은 동해로 나가 고래의 유영을 볼 수도 있다. 연안코스에서는 현대중공업, 현대자동차 선적부두, 울산대교 등 울산항과 연안 경관을 볼 수 있다.
장생포와 방어진을 연결하는 울산대교는 울산12경 중 하나다. 1800m 현수교는 2015년 개통했는데 주탑과 주탑 사이 거리인 단경간이 1150m인 현수교로써 세계에서 세 번째로 길다. 최장 단경간 기록은 1400m의 중국 룬양대교, 두 번째는 1300m 장진대교다.
울산대교 전망대에서는 도심의 일몰과 산업단지 불빛이 어우러진 야경을 감상 할 수 있다. 이 풍경은 지난해 한국관광공사가 ‘야간관광 100선’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현대미포조선은 바다 위에 선박블록 제작공장을 세워 해상옥외작업장에서 선박을 제조한다. 이런 해상공장은 공장부지난 해소, 물류비 절감, 일자리 창출 등 효과가 있다. 바다 위가 일터다 보니 장생포 앞바다는 이런 종사자들이 이용하는 수상택시가 운항 중이다.
이처럼 장생포 바다는 선박 통행이 잦다. 그래서 항로에는 7개 등대가 설치돼 있다. 등대 중에서 바다 위에 떠 있는 항로표지를 등부표라고 부른다. 이 등부표는 지름 2.4m에 높이 5.4m의 원추형으로 만들어졌다. 항로의 신호등 역할을 한다.
등부표는 파도나 조류에 떠내려가지 않도록 중량 4톤짜리 무게 중심추가 바다 아래로 향하는 이른 바 침추 2개가 물속에 사슬로 연결됐다. 때로는 선박이 운항 부주로 충돌하거나 손상돼 등대 위치가 바뀌는 경우도 있다. 이는 사고유발의 원인이 된다. 그래서 울산지방해양수산청에서 수시로 작동여부를 확인하고 2년 주기로 시설물을 점검하고 교체한다.
가수 윤수일 씨는 장생포 죽도 출신이다. 그는 1984년 ‘아름다워’를 히트시키던 시절에 11년 만에 고행을 찾았지만 동백꽃 무성하고 갯바위가 즐비하던 섬은 육지가 된 채 쓰레기더미뿐이었다고 한다. 그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환상의 섬’이란 노래로 작곡했다.
환상의 섬 바로 앞에 거대한 선박과 크레인으로 둘러싸인 현대미포조선과 환상의 섬 사이에 울산항매암부두 파제제등대가 있다. 파제제는 항구 내 방파제 역할을 하는 시설이다. 반대로 바깥쪽 바다에서 밀려오는 파도를 막아주는 시설을 방파제라고 부른다. 이 등대는 유조선, 화학제품 운반선 등 각종 화물선 항해의 길라잡이 역할을 한다.
장생포에는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센터가 있다. 이날 마침 고래연구센터에서는 해양생태계연구 언론인회(해언회) 세미나가 열렸다. 주제발표자 손호선 고래연구센터장은 “현재 전 세계에 90여 종의 고래가 서식 중이고 ‘해양생태계 보존과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보호대상해양생물 10종인데 우리바다에 유영 중인 고래는 밍크고래, 참고래, 낫돌고래, 상괭이, 남방큰돌고래가 대표적”이라고 설명했다.
세계 포경의 역사는 7000년 전 한반도 선사시대 포경 장면에서 시작됐다. 선사시대 암각화를 통해 울산 앞바다에 수많은 고래가 서식했고 이를 입증하는 암각화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됐다.
반구대 암각화는 국보 285호이고 울산 12경 중 하나다. 암각화에는 북방긴수염고래, 혹등고래, 참고래, 귀신고래, 향유고래와 같은 대형고래와 바다거북, 물개, 물고기, 바다 새와 같은 바다동물 등이 등장한다.
손호선 고래연구센터장은 “반구대 암각화에는 그림 296점이 등장하는데 동물이 193점으로 65.2%를 차지하고 고래가 58점으로 30%를 차지한다”라고 분석했다. 그만큼 장생포에는 고래가 많았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이양선(異樣船)이 경상·전라·황해·강원·함경 다섯 도의 대양에 출몰…고래를 잡아 양식으로 삼기도 하는데, 거의 그 수를 셀 수 없이 많았다.”라고 기록했다.
9세기 바스크인의 상업적 포경이 시작되고 14~17세기에는 대서양 포경시대가 열렸다. 17~20세기에는 미국 주도의 포경시대가 열렸는데 해양산업의 경쟁은 미국과 멕시코 참지전쟁 등을 둘러싼 각국의 국제적 주요 이슈와 분쟁으로 이어졌다.
반구대암각화는 인류 최초의 포경유적일 뿐만 아니라 해양생태계의 가치와 그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있다. 그 많던 고래들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해양생태학자 엔릭 살라(Enric Sala) 박사는 “내가 가장 행복한 순간은 바다 속, 특히 바다의 최상위 포식자들이 많은 곳을 발견했을 때”라고 말했다. 그는 “포식자가 있다는 것은 해양생태계를 구성하는 모든 것들이 더 많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것은 곧 물이 건강하다”는 뜻이다.
장생포와 고래이야기는 지금 울산 앞바다, 동해의 건강성을 되묻는다. 우리나라는 3면이 바다인 해양민족이다. 우리는 그 후예들이다. 그래서 사라진 고래이야기는 그저 옛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고래가 되어 앞으로 우리네 삶의 바다를 어떻게 유영할 것인지에 대한 단초가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