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썩철썩, 파도치는 섬은 깨달음의 훈련장이다. 섬은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놀라게 한다. 늘 그 자리에 있는 섬과 시나브로 변하는 인간은 대조적이다. 태양은 떠오르면 지고 지는 해는 반드시 떠오르지만, 인간의 시작과 끝은 파편적이다. 변화시킬 수 있는 것, 변화시켜야 하는 것은 우리들 자신이다. 인간의 성급함, 결여된 관용은 자연과 거리를 멀게 할 뿐이다...
물치도는 인천시 동구 북서쪽에 위치한 무인도다. 섬 면적 0.073㎢, 여의도 4분의 1이다. 해안선은 1.2km. 연안부두에서 5Km, 월미도에서 3Km 거리에 있는 물치도는 작약도로 더 알려져 있다. 작약도는 지난해 제3차 국가지명위원회를 통해 ‘물치도’로 변경됐다. 지난해 7월 국토지리정보원은 변경 지명을 고시했다.
작약도는 작약이 많이 자생한다 해서 불렀다는 설과 일제 때 일본 화가가 섬을 소유할 적에 작약 봉우리를 닮았다 해서 그리 불렀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대동여지도, 동여도 등 조선시대 후반에 제작된 지도, 정부가 발행한 도서총람에는 ‘물치섬’으로 기록돼왔다.
물치도는 강화해협의 거센 조류를 치받는 섬이라 뜻이다. 실제 지도를 펴놓고 봐도 물치도는 월미도와 영종도 사이 좁은 해협에 끼여 파도친다. 운명적으로 해풍과 조류를 견디며 서 있다. 거센 물결이 밀려올 때마다 온몸으로 짠물을 받아치면서 견뎌 왔을 물치섬의 갯바위에서 팔베개한 채로 영종도로 가는 여객선과 마주했다. 파도에 씻기고 풍랑에 깎이며 만들었을 해식애가 잘 발달돼 있다.
월미도에서 배를 타고 20분이면 당도한 물치도는 연간 25만명이 찾던 인천의 대표 휴양지였다. 꼬마섬이지만 주말이면 횟집들이 문을 열었고 섬은 30분 정도면 다 돌아볼 수 있는 아담한 코스다. 연인들 데이트 코스로 인기였다. 여객선은 월미도∼작약도∼영종도 구읍뱃터를 운항하다가 이용객 감소 이유로 2013년에 운항을 중단했다.
섬 안에는 아름드리 소나무와 대숲이 들어찼다. 숲에서 바닷가로 이어지는 오솔길 따라 해안 길을 걷는 코스가 제법이었다. 승용차가 다닐 수 없는 섬의 유일한 운반수단은 리어카다. 리어카처럼 천천히 사는 방식 대해 골몰하며 세월의 그림자를 따라 터벅터벅 걷노라면 여기가 적막한 무인도임을 실감하곤 했다. 도시에서 바삐 살아가면서 먼 섬으로 여행가기에 부담스러울 때 훌쩍, 무인도로 떠날 수 있었으니 얼마나 좋으랴.
물치도는 해발 57m에 불과하지만 가족나들이와 청소년 체험학습장으로 제격이다. 산림이 울창하다. 신미양요 때 미군들은 나무가 많다고 해서 ‘목도’라고 불렀다. 정상에 작약도등대가 있다. 어민들의 등불이자 군사적 요충지, 영종도 국제공항과 인천항의 길잡이 역할을 한다.
등대는 해방 후인 1949년 7월에 첫 불을 밝혔다. 철공소에서 산소 용접 때 순간적인 불꽃을 틔기는 원리를 이용한 소위 아세치렌 전등을 탑재했다. 당시 등대 이름은 물치섬 등대였다. 2002년 12월에 20m 높이의 콘크리트 등탑에 태양전지를 이용하며 재단장해 더욱 밝은 불빛을 발사했다. 등대 불빛은 32㎞까지 비춰준다. 암초가 많은 이 일대를 항해하는 선박은 물론 인천항과 공단을 오가는 선박, 영종도, 용유도 해역까지 안내하는 중요한 이정표 역할을 한다.
등대 아래서 바다를 바라보면 솔숲 사이로 빼꼼히 드러난 푸른 물결과 여객선, 화물선 항해와 갈매기 떼의 비상을 조망할 수 있다. 쉼 없이 푸른 하늘에 연기를 뱉어내는 공단의 색색의 굴뚝 연기도 또 다른 색감으로 다가온다. 공단 근로자 눈빛과 손길이 그려지고 영종도로 드나드는 여객선과 항공기, 해양산업 현장의 역동성까지 퍼 올려주며 물치도 푸른 물살은 철썩인다.
해변은 단조롭지 않고 썰물 때 조약돌과 갯벌이 깔려있어 가족과 연인들이 발이 빠지지 않으면서 바지락, 고동 등을 잡을 수 있다. 조수 간만의 차가 심해 다양한 어종이 몰려든다. 밀물 때 수심은 20m 정도인데 선착장 주변, 썰물 때는 갯벌 끝자락에서 입질이 좋다. 주 어종은 숭어, 망둥어, 우럭, 장어 등이다. 낚시 제철은 8월부터 10월이다.
물치도는 해방되면서 미군의 도움을 받아 한국인 이종문씨가 고아원을 운영했다가 6.25 전쟁으로 폐쇄됐다. 광복 후 적산처리로 일부를 제외하곤 대부분 개인 소유다. 인천시는 이 섬을 자연을 그대로 복원한 시민 해양문화공간으로 조성할 계획이었다. 섬에 해수욕장, 보트장, 양궁장, 야외조각전시장, 모노레일, 영종도와 다리 연결, 숲속쉼터, 바다정원 전망소, 둘레길 등을 조성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었다.
계획안에는 섬 매입비 70억원 등 138억원을 투입해 선착장 복원과 월미도-작약도 해상항로를 만들 참이었다. 그러나 계획은 지난해 7월 장기 미집행 도시계획시설 일몰제에 따라 자동 해제됐다. 결국 물치섬 프로젝트는 민간개발업자의 손에 맡겨진 셈.
지난 1996년 1월 유원지로 최초 지정됐던 작약도는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면서 번번이 개발에 실패했다. 인천시는 작약도를 매입해 공영개발을 구상했지만 섬 소유권이 수차례 경매로 넘어가면서 암초를 만났다. 최근 새 주인은 매입 예산 70억 원을 제시한 인천시 개발계획안을 거부했다. 인천시도 사업 추진을 포기했고 지난해 7월 1일 자연녹지로 환원됐다.
인천시 관계자는 “작약도 유원지는 지난해 경매로 소유권을 넘겨받은 업체 측에서 자체 개발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해 공영개발이 무산됐다”면서 “유원지는 공원과 달리 수익시설이기 때문에 인천시가 무리해 웃돈을 주고 매입할 필요성까지는 없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관광지 사업의 최종 승인권은 자치단체에 있다. 따라서 민간개발을 하더라도 물치섬에 대한 사업 진정성 여부 등을 검토하는 것은 인천시의 최종 권한이다.
작약도 항로를 오가던 여객선사는 사업성을 이유로 철수했었다. 당시 월미도를 찾던 여행자들이 잠깐 들리던 유원지 성격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섬의 가치를 아주 진중하게 되돌아봐야 할 때다. 최근 우리나라 국격과 국민성은 상업적 섬 개발을 쉽게 묵인할 정도가 아니다.
물치도는 역사적 섬 문화를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복원할 문화유산의 보고다. 인천항 개항과 궤를 같이하고 청일전쟁, 러일전쟁, 병인양요, 신미양요 때 강대국들의 거점이었다. 프랑스 군대는 자국 함대 이름을 따서 ‘보아제 섬’으로 불렀고 미군은 나무가 많은 섬이라고 해서 ‘우디 아일랜드’라 명명했던 섬이다.
독도, 이어도 등 영토분쟁 때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듯 ‘애국’과 ‘섬’을 말하지 말고 진정, 해양민족 후예로서 반도국가의 국민성으로 섬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 섬은 우리의 존재 자체다. 세계 물동량 78%가 바다를 통해 교역한다. 우리나라 수출입 물동량 99.7%가 바다를 통한다. 우리나라 선박 건조량은 세계 1위다. 우리에게 바다는 삶의 터전이고 우리의 경쟁력이다.
물치도는 공익적 프로젝트로 진행돼야 한다. 우리 후손들에게 자랑스러운 섬 문화유산으로 물려줘야 한다. 반드시 국민과 인천시민의 품에서 파도치는 그런 물치도여야 한다.
물치도 가는 길은 연안부두, 월미도, 영종도, 용유도 등에서 낚싯배 등 사선을 이용한다.
문의: 인천시 관광진흥과(032-440-40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