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 기획] 섬문화연구소·해양생태계연구언론인회 학술세미나

‘유인등대 무인화’ 문제점 심층 진단, 토의…등대 전문가와 언론인 모여 미래 지향적 발전 모색
한규택 기자 2022-12-22 08:00:13

과학 기술의 급격한 발전은 사람의 손길을 기계의 작동이 대체하는 무인화 시스템의 확산을 가져왔다. 효율성과 예산 절감 등 무인화의 장점은 뚜렷하다. 하지만 모든 분야에서 사람을 대신하는 무인화 시스템이 일률적으로 적용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작업의 성격과 무인 기계의 작동 범위 및 능력 등에 따라 숙련된 전문 인력의 경험과 판단이 꼭 필요한 분야들이 다수 존재하기 때문이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유인등대의 무인화’ 논란 또한 등대의 고유한 기능과 역사적 의미, 사회적 역할 등의 측면에서 유인등대의 무인화가 적합한지를 냉철하게 따져보아야 한다. 무인등대에 대한 반대가 기술적 진보에 대한 복고적 저항으로 비치지 않기 위해서는 무인등대화의 문제점과 유인등대의 필요성에 대해 논의하고 대중적 공감대를 넓히는 작업이 급선무다.

때마침 해양수산부가 추진하고 있는 ‘유인등대 무인화’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유인등대의 필요성을 다각적으로 재조명함으로써 등대의 미래지향적 발전 방향을 모색하는 세마나가 지난 21일 서울 정동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세미나실에서 열렸다.

세미나 사회를 맡은 박상건 소장과 발제자 및 토론자들(사진=섬문화연구소DB)

섬문화연구소(소장 박상건)와 해양생태계연구언론인회(해언회)가 주최하고 삼성언론재단이 후원한 이번 세미나는 ‘유인등대 무인화’에 대한 발제와 등대 관련 전문가들의 토론 및 질의/응답 순서로 진행됐다.

먼저 사회를 맡은 박상건 소장은 “아주 중요한 유인등대 무인화 문제를 심도 있게 토론하고자 등대 전문가분들을 토론자로 많이 모셨다”고 참석자들을 소개했다. 이어 “유인등대를 살려야 할 이유는 많은데 보도된 적은 없고, 기술 진보에 따른 무인화 논리만 일방적으로 보도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여론화가 (이 세미나의) 주 목적”이라고 밝혔다. 이어 발제에 나선 김종헌 배재대 교수는 ‘유인등대 무인화 이대로 좋은가’라는 주제로 유인등대 무인화의 추진 경과, 무인화의 목적과 현황 및 문제점, 추진전략 및 개선방안 등에 관해 발표했다.

김종헌 교수는 “(등대에서 비추는) 빛을 통해서 선박의 안전을 지키던 것이 기술의 발전에 따라 전파로 대체되면서 유인등대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제기됐다”면서 “스마트 항로 표지 및 e-Navigation 시스템이 보편화되면서 선박의 자율운행에 도움을 주는 데이터나 전파를 전달할 수 있는 기지국이 필수적인데, 이를 선박운행에 중요한 위치에 있는 기존 등대가 수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즉, ‘빛을 비추는 등대(Lighthouse)가 데이터를 관리, 전달하는 기지국(Datahouse)으로 전환되어야 하고, 미래의 항로시스템 구축에 첨단화된 등대시스템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현재의 무인등대화는 전면적으로 재검토돼야 한다는 논지다.

세미나 발제를 맡은 김종헌 교수(사진=섬문화연구소DB)

이는 기술적 진보에 따른 등대의 소멸이 아니라 첨단 기술의 활용에 핵심이 되는 새로운 등대의 탄생을 시사하는 것이라 주목된다. 무인화 시스템이 대체할 수 없는 기존 유인등대의 고유한 기능과 역사 및 사회문화적 자원으로서의 가치라는 기존 논리에 덧붙여서 기술이 날로 고도화되는 미래에도 꼭 필요한 등대의 새로운 역할과 기능을 부각시켜 또 다른 측면에서 ‘유인등대 무인화’의 문제점을 비판한 것이다.

또한 김 교수는 선택과 집중을 통한 유인등대의 역할 변화를 강조했다. 영토수호, 불법조업감시, 구호시설, 관측시설, 통신기지 등으로 유인등대의 역할을 다변화하면서도 효용성이 약화된 유인등대는 무인화를 추진하며, 등대를 국민들이 즐겨 찾는 매력적인 해양문화공간으로 조성할 것을 제안했다. 아울러 현재까지 무인화한 등대 중 마산 홍도, 칠발도 등대, 죽도, 목덕도 등 네 곳의 등대는 다시 재(再)유인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토론에 나선 박재현 전 해양수산부 항로표지과장은 “인원 감축 문제만 등장하면 제일 먼저 나오는 게 등대원 감축”이라면서 행정논의 체계에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또한 “현재 IMO(국제해사기구)에서는 빛을 이용한 등대를 폐지하지 못하게 한다”면서 GPS와 DGPS를 결합한 전파 위주의 자율항로 시스템이 모든 등대를 대체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편 석영국 전 항로표지기술협회 본부장은 스마트항로표지를 위한 첨단 정보를 관리하고 전력을 생산하는 기지국으로서 기존 등대를 활용하자는 김종헌 교수의 제안에 전적으로 공감을 표했다. 아울러 해상안전에 중요한 위치에 있거나 국도 끝단에 있는 일부 등대는 재유인화하거나 향후 무인화하려는 계획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미나 광경(사진=섬문화연구소DB)

이어 김은홍 전 인천해수청 팔미도등대 소장은 “등대를 지키기 위해 투철한 사명감을 갖고 현장에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등대를 지킬)힘이 없다”고 토로하면서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또한 “등대 인력 감축을 통한 비용 절감만큼 무인화 시스템에 유지에 필수적인 장비의 관리비용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인공시스템보다는 사람이 가장 정밀하고 침착하고 (뒷처리가)깔끔하다“면서 “인공시스템은 계산력만 빨라서 사람에게 판단할 정보를 제공할 뿐”임을 강조했다.

토론에 이어 진행된 참석자들의 질의‧응답에서는 등대 무인화가 세월호 침몰 사고 발생 및 수습에 미친 영향에 대한 설명과 유인등대를 정부가 아닌 NGO와 같은 민간단체나 법인 등이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좋은 환경을 조성해서 매력적인 포인트로 만들어 가는 해외 사례에 대한 소개 등이 있었다. 또한 한 참석자는 "이 세미나에 참석한 후 비로소 등대의 유인화를 유지해야 하는 필요성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다"는 소회를 밝히면서, 시대 흐름에 거스르는 듯한 인상을 주기보다는 안보와 지정학적 특수성 등 우리나라의 특수한 상황을 강조하면서 미래의 등대 역할을 재조명하는 방향에 포커스를 맞추면 (유인등대 유지의 논리가) 상당히 설득력 있을 것 같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세미나 참석자들(사진=섬문화연구소DB)

세미나 마무리 발언에서 발제자인 김종헌 교수는 “해양수산부가 등대를 없애는 것은 해양문화를 전파시키는 게이트웨이(Gateway)를 없애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유인등대의 무인화’는 근시안적인 경제적 효율성이나 행정적 편의주의에 매몰된 결과물이자 100여 년 동안 우리나라 바다를 밝게 비추어 온 등대의 역사성과 사회문화적 자산으로서의 가치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다. 미래 우리 바다의 길잡이이자 파수꾼이면서 많은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주인공은 무인화된 시스템이 아니라 새로운 기능과 역할을 담당하는 등대와 그 등대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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