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풍경이 있는 삶] 신경림, '갈대'

인생 길..."저를 흔드는 것이”,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박상건 기자 2022-05-13 09:16:13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 신경림, ‘갈대’ 전문

 

갈대(사진=섬문화연구소 DB)

1956년 <문학예술>에 발표된 이 시는 시인이 스무 살 때 쓴 처녀 작품이다. 시인은 충주고 시절, 국어시험시간에 시험지 대신 시를 제출할 정도로 문학 열병이 뜨거웠다. 대학 때 등단 후 지독한 생활고로 10년간 문단과 멀어진 채 낙향과 귀경을 반복하며 막노동과 등짐장수, 번역, 학원 강사 등을 했다. 

“역경의 세월이었네요?”라고 말하자, 시인은 “무슨 놈의…그 시절 고생 안 해본 사람 어딨어?”라고 반문했다. 질기고 쓰디쓴 세월은 앞서 지면에 소개한 농무, 목계장터, 별 등 농익은 걸작으로 빚어졌다. 첫 시집 ‘농무’는 ‘창비시선’ 1호로 출간됐다. 

시인의 작품세계는 농민 등 민초의 삶을 소재로 자연과 접점을 이루는 인간의 보편적 쓸쓸함, 고단함, 고독함이 민요 가락으로 엮어진다. 

‘갈대’는 갈색이고 습지에 서식한다. 억새는 산에서 무리를 이뤄 서식하고 은빛 물결이 장관이다. 모두 억세게 살아가는 삶을 은유하는 점에서 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굳이 구분할 필요는 없다. ‘갈대’는 사유하는 삶, 연약한 인간을 의인법으로 묘사한 철학적 서정시에 해당한다. 

갈대는 흔들린다. 속울음 울며 사는 게 인생이다. 그렇게 흔들리며 사는 인생길, 알고 보면 “저를 흔드는 것이”,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을, 그것은 정녕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까맣게 몰랐다.” 젊은 날엔 그랬다. 꺼이꺼이 속으로 울고 흔들렸다. 그렇게 켜켜이 연륜이 쌓이고서야 알았다. 그것이 우리네 인생이란 것을. 

‘조용한 속울음’은 미처 알지 못했던 근원적 고통과 고독의 파편이다. 그 울음은 타의가 아닌 나, 인간의 근원적 슬픔에서 용솟음친 것이다. 우리는 세상에 울음소리로 잉태했고, 살며 저물어가며, 허무하고 고독한 삶과 만날 수밖에 없다. 인간은 본디 불완전한 존재임으로. ‘갈대’는 그런 인간의 숙명적 비애를 노래한다. 

신경림 시인은 1936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나 동국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1956년 <문학예술>로 등단했고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을 지냈다. 시집으로 ‘농무’, ‘새재’, ‘남한강’,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평론집 ‘문학과 민중’, ‘삶의 진실과 시적 진실’, 산문집 ‘바람의 풍경’, ‘민요기행’ 등이 있다. 만해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4.19문화상, 단재문학상, 대산문학상, 공초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글‧사진: 박상건(시인,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

 

 

 

 

    박상건(시인. 섬문화연구소장)

섬TV

신경림, '갈대'

신경림, '갈대'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타인의 섬으로 여행을 떠나자

타인의 섬으로 여행을 떠나자

‘몰디브, 보라보라, 발리......’ 신문에서 자주 접하는 섬들이다. 이곳에는 무성한 야자수와 금가루 같은 백사장, 그리고 돈 많은 관광객이 있다
日・中, 우리바다 넘본 이유

日・中, 우리바다 넘본 이유

대한민국은 3면이 바다인 해양민족이다. 늘 푸른 바다, 드넓은 바다, 3000여 개가 넘는 섬들은 우리네 삶의 터전이자 해양사가 기록되고 해양문화가 탄
화성시 서신면 전곡항 등대

화성시 서신면 전곡항 등대

화성시 전곡항은 시화방조제가 조성되면서 시화호 이주민을 위해 조성한 다기능어항이다. 항구는 화성시 서신면과 안산시 대부도를 잇는 방파제가 건
충남 당진시 송악읍 안섬포구 등대

충남 당진시 송악읍 안섬포구 등대

아산만 당진시 안섬포구는 서해안 간척 시대의 어제와 오늘, 서해 어촌이 걸어온 길과 관광 대중화에 발맞춰 섬과 포구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보여주
군산시 옥도면 무녀도

군산시 옥도면 무녀도

새만금방조제를 지나 신시도에서 고군산대교를 지나면 무녀도다. 무녀도는 선유대교를 통해 선유도와 장자도와 연결돼 차량으로 고군산군도를 여행
(7) 푸른 하늘, 푸른 잎의 미학

(7) 푸른 하늘, 푸른 잎의 미학

봄이 왔다. 푸른 하늘이 열리는 청명을 지나 본격적인 농경이 시작되는 곡우를 앞두고 봄비가 내렸다. 농어촌 들녘마다 새싹이 무럭무럭 자라나 올 농
(7) 떠나가고 싶은 배

(7) 떠나가고 싶은 배

코로나로 모두가 묶여 있은 세상. 떠나고 싶다. 묶인 일상을 풀고 더 넓은 바다로 떠나고 싶다. 저 저 배를 바라보면서 문득, 1930년 내 고향 강진의 시인
(6) 호미와 삽

(6) 호미와 삽

소만은 24절기 가운데 여덟 번째 절기다. 들녘은 식물이 성장하기 시작해 녹음으로 짙어진다. 소만 무렵, 여기저기 모내기 준비로 분주하다. 이른 모내
신경림, '갈대'

신경림, '갈대'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그 섬에 다시 갈 수 있을까

그 섬에 다시 갈 수 있을까

아마추어 사진동호회의 총무, K의 전화를 받은 건 며칠 전이었다. 모처럼의 통화였지만 K의 목소리는 어제 만나 소주라도 나눈 사이처럼 정겨웠다. &ldqu
하와이 제도 <7> 하와이 아일랜드

하와이 제도 <7> 하와이 아일랜드

하와이 아일랜드는 하와이 제도에서 가장 크고 제일 어린 섬이다. 빅 아일랜드라는 별명에 걸맞게 다른 하와이의 섬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 거의 두 배